소나기

by nEvergreen

같이 온 팀과 그룹들과 떨어져 얼마간의 자유시간을 누리며 길을 걷고 있다가 계곡을 알리는 알림판에서조차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계곡 물은 시원 차게 어디서 시작됐을지 모를 산 위 어딘가에서부터 쏟아지고 있었다.


조금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계곡물 위에 놓여 있는 돌다리가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산 계곡 위쪽에서 몰려오는 차가운 바람은 순식간에 몸에 붙어 있는 땀들을 떼내어 계곡 아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돌다리를 건너 작은 오솔길을 따라 계곡 위쪽으로 좀 더 거닐어 보았다.


코 속이 아파왔다. 둘은 서로의 상태를 물으며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숲 속 공기가 너무 맑아서임을 알아챘다. 도시의 탁한 공기에 익숙한 그들의 콧속 신경들이 이 순수하고 깨끗한 기운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었지만 이 소박한 산길을 치장하려는 듯 길가 주위로 자신들의 객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웨딩파티에 장식되어 있는 것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생기 있는 나뭇잎들의 싱그러움과 나무줄기들의 선명한 결들은 인류가 탁월하게 쌓아 올린 인공의 거대한 것들을 한없이 깔보고 있었다. 이 이름 없는 꽃들이 종류를 알 수 없는 풀들과 나무들이 인간의 손이 닿기 이전에 태초에서부터 신의 신성한 손에 만들어졌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호와 송이는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지만 일상의 삶에서 자연을 도외시했던 부끄럼들이 충분한 압력을 갖고 마음을 누르고 있음을 또한 느꼈다.



“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요!”

송이가 옷을 갈아입으며 소리쳤다.

민호도 “송이씨도 뒤돌아보지 말아요!”

그 둘은 다짐의 말을 하며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산 계곡에서 만난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아름드리나무들의 잎들로도 막기에 부족했다. 그들은 있는 힘껏 달려 피할 만한 장소를 찾아 달려갔지만 굵은 빗줄기에 둘 다 옷이 다 적고 말았다.

다행히 한 허름한 헛간 같은 것이 보였다. 누구의 동의도 없이 그 둘은 그곳으로 뛰쳐 들어갔다. 헛간 한편에 볏짚들이 쌓여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썩은 볏짚들이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나마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송이는 마른 볏단 곁으로 민호는 썩은 볏단 쪽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산 자락이라 비를 머금은 공기는 그들의 체온을 급속도로 떨어 뜨리고 있었다. 함께 온 팀들한테로 돌아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려야 했다. 백팩 속에는 둘 다 외출용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가벼운 옷들이 있었다.


그 둘은 동시에 갈아입기로 했다. 밖은 적게나마 비가 오고 있었고 누가 밖에서 망보고 그러는 동안 안에서 갈아입기보다는 이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뒤돌아보지 않기로 다짐하며.


그녀는 “뒤돌아보지 말아요!”를 되풀이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너무 조심스럽고 긴장한 탓이었던지 그 말을 하는 순간 고개를 상대방 쪽으로 살짝 돌려 버린 것이었다.


탄력 있는 엉덩이 살 양쪽 볼이 살짝 패어 있었고 보기 좋게 엉덩이 살들이 허리 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살짝 그을린 듯한 색깔의 살들이 물기에 적셔져 윤기를 더해 내고 있었다. 눈빛의 손이 그 표면 위를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순간이 동시간에 놓여 있을 때 눈길을 돌리려 하였다. 그 순간, 민호의 눈과 마주쳤다.

“아악!”

그 둘은 다른 의미 감탄사를 같은 말로 내뱉었다. 둘 다 몸을 움츠리며 그 자리에서 옷을 쥐어 감싼 채 주저앉았다.

“송이씨, 너무 하네요. 안 보기로 했잖아요?”

그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아… 저.. 정말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말을 하는 순간에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그만…”

“정말 미안해요. 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 예요.”

반복적으로 그녀는 그녀의 무죄를 그에게 설득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도 갑자기 그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민호씨는 왜 뒤돌아본 거죠? 나랑 눈이 마주쳤잖아요!”.

그녀는 갑작스럽게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용기가 생겼다.

“그… 그것은 송이씨가 나를 보고 있을까 해서 그런 거였어요”

말이 안 되는 변명이 갑작스레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태어나서 가장 자신이 싫은 순간이 되어 버렸다.

“그게 말이 돼요?”

그녀는 승기를 잡고 그를 몰아세웠다.

“저는 무의식적이었지만 당신은 의도적이었잖아요!”.

“아니 무의식적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죠? 그건 말에 불과해요. 그리고 무의식적이었다면 바로 고개를 돌렸어야죠. 보니까 한참 감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얼굴이 속에서부터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기서 지면 안 된다. 지면 나는 나쁜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어려운 변명을 이어갔다. 왜, 그때 고개를 바로 돌리지 않았나 후회하며.

말다툼은 항상 여자가 이기는 법이다. 아니 사실상 그가 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의 그 순간 이전에 민호가 그녀의 것을 먼저 훔쳐보고 말았다. 비슷한 이유로. 아니 좀 더 본능에 더 가까운.


아주 작지도 크지도 않은 유려한 엉덩이 선이 움푹 들어간 허리 선 아래를 둥글게 그리고 있었으며, 팽팽히 팽창한 얇은 고무풍선 표면같이 매끄러운 피부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로 그 헛간 안에는 안 어울리게 빛나고 깨끗했다.


민호가 송이와 시선이 마주친 것은, 전과가 있는 경력으로 다소 무디어져 버린 양심에 얇디얇은 용기의 표피가 덧 입혀져 다시 한번, 딱 한 번 더, 그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져 행하다 그만…


그의 목소리는 그녀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이 이렇게 확실한 승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빗줄기는 어느덧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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