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무엇인가

by nEvergreen

작은 나뭇가지 한 개나 비스킷 한 조각을 부러뜨리면 그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릴, 바삭한 마른 공기 속을 커피의 윤기 어린 김이 경쾌히 날아올라가고 있었다. 그 율동적인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에 잔뜩 뿌려진 향기를 사방에 흩뿌리며 시간도 이끌고 있었다.


민호는 크림이 잔뜩 올려진 캐러멜 마키아토를 송이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맞선 보게 하고 있었다.

“취미가 뭐 예요?”

민호가 물었다.

“음악 듣는 것이랑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요.”

“아~” 수긍하는 듯한 말로 대꾸하며 민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씨는 취미가 뭐 예요?”

당연히 뒤따를 질문이었다. 물론 그러리라고 충분히 기대되는 질문을 민호는 다음과 같이 맞받았다.


“저도 음악 보는 거랑 영화 듣는 것을 좋아해요”

잠시 뭔가 모를 혼동이 있었으나 살포시 미소를 던지며 송이가 말했다.

“재치 있으시네요. 아니면 조기 치매증을 가지고 계시던가”

커피 잔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송이가 말했다.


민호는 대꾸를 하지 않고 잠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경남 통영에 가 봤어요?”

“아뇨, 아직. 꽤 이쁘다고 하던데.”

“가 보셨어요?” 상투적인 질문으로 송이가 대꾸했다.


“아뇨, 저도 아직. 그런데 그곳에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과 같은 언덕에 유명한 카페 하나가 있대요. 카페 이름이 뭔지 아세요?”

“당연히 저는 모르겠지요. 뭐예요 이름이?” 호기심이 조금 발동했다.

“몽마르다 카페”

그녀는 다시 한번 뭔가 모를 혼동에 잠시 사로 잡힌 듯한 표정을 지은 후 이윽고…

“하하하!”

반전이 있으며,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면 으레 있을 반응.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그 의상의 것을 품고 있었다. 이 농담이 특별한 누구한테서 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녀의 반응은 조금 과했다. 고개마저 살짝 뒤로 재껴지고 말았다.


“목마르다… 하하”, “이거 어디서 들은 얘기예요?”

“아니요, 어느 날 문득 여행 블로그를 감상하다 보았어요.”

민호는 언젠가는 이루려고 꿈을 품어왔던 것이 이루어진 듯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일어남을 느꼈다.

“그것을 보니, 언젠가 통영에 한 번 가고 꼭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민호는 쉼표 없는 조바심이 마음속에서 뚫고 나오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

“…”

있을 법한, 아니 이어져야 할 그녀로부터의 대꾸는 민호의 조바심을 인내의 감옥으로 몰아넣고 말었다.


이윽고,

“언제 한 번 꼭 가 보세요”

마침내 그 감옥 문이 살짝 열린 듯했으나, 이내 더 무서운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송이는 커피에 전보다 더 조심스레 입술을 갖다 대었다.

실망은 어느 정도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 그러나, 민호에게 지금은 가슴이며 머리를 둔기로 한 번씩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을 막고 있는, 강하고 이길 수 없는 보드가드를 발견한 것 같았다. 지난 소나기 사건 때문이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은 정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민호의 실망은 송이에게도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대꾸가 새하얀 드레스 위에 커피를 엎지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그러면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지만 분노보다는 서글픔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동안 민호에게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송이는 이러한 침묵이 마치 사약이 몸으로 서서히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메말라진 길에 영롱한 빛이 드리워져야 했다.

“최근에 우연히 오래된 영화 “라스트 콘서트”라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프랑스를 배경으로 혈액암에 걸린 한 여자와 중년 작곡가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였어요”.

“어떻게 보셨네요? 아주 꽤 오래된 영화고 저도 중학교 때인가 보았어요.” 민호의 말은 호기심이 배어 있었지만 다소 거칠고 퉁명스러웠다.

“영화가 꽤 오래전에 만들어서인지 지금 감성 하고는 잘 안 맞지만, 마지막 장면과 음악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여자 주인공이 연기를 진짜 못 해요.” 배식 웃으며 송이가 말했다.


민호는 그 말을 받아,

“여자 주인공 스텔라가 작곡가 리쳐드의 초연 작품 ‘스텔라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죽어가는 내용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촉촉함이 걸러진 메마른 답변이었다.

“맞아요! 스텔라가 결국 병 때문에 예쁜 드레스를 입은 채 그 곡을 들으며 죽죠.” 송이는 그래도 동의를 해 주는 것에 반기어 대꾸를 하였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영화니까 그렇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으면, 그 곡은 사실 표절이에요”

“예? 표절이라고요.”


대화가 갑자기 활기를 띄었다. 아니 활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며 송이에게는 갑자기 어두운 골목길에서 환한 큰 도로로 나온 느낌이었다.

“그 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사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주제 파트를 본 딴 거예요.”

“그래요? 저는 클래식을 잘 몰라서…”. “아무튼 영화라 다행이네요.”

“만약 실제이고 리쳐드가 그녀의 마지막 소원,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표절이라도 하면서 그렇게 했다면요? 그것도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었던 것을. 그것은 잘한 일일까요?” 민호가 물었다.

“그 작곡가가 그럴 능력과 상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는 거라면…”

송이의 말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때론 선을 위해 거짓을 이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민호의 말은 다소 날카로웠다.

“리쳐드는 스텔라가 죽고 나서 세상에 표절을 고백하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혼자 쓸쓸히 지내면 그만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 주었으니까. 그렇지 않나요?” 송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어렵네요? 절대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송이는 그렇게 마무리하였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들어 본 적이 있어요?” 민호가 이어지는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요. 얼마나 감동적인 음악인데” 송이가 활기차게 답했다.

“이제 저랑 조금 코드가 맞아 들어가네요” 민호가 송이의 센스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송이는 상황이 나아진 것이 속으로 기뻤다.


“그 소설의 숨겨진 주제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세요?” 이번에도 민호는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숨겨진 주제? 가난하고 늙은 화가의 숭고한 희생정신 이런 게 아니었던가요?”

“사실 그 화가는 미술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굉장히 중요시했어요. 정밀묘사를 싫어했고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대가의 작품을 습작해서 파는 화가 지망생들을 비난했지요. 정밀묘사를 할 바에야 차라리 사진이 낫지 왜 그림을 그리냐는 것이었죠. ”


민호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가는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진짜 나뭇잎과 똑같이 그릴 필요가 있었잖아요. 결국 자신이 비판하던 것을 사용해서 생명을 살리죠.”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때론 선한 결과를 위해 진실이 아닌 것들, 가짜의 것들이 필요한 것일 수도…” 송이는 항상 회색지대에서 답을 찾는 것 같은 자신이 싫다고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나요? 인공 장기, 인조 보족기, 인조 장치…. 인조인간, 로봇 애완동물…. 많은 것들이 인간 삶을 돕고, 풍부하게 편하게 윤택하게 만들고 있잖아요.”

“그것도 한계가 있을 거예요. 무엇이든지 인간의 욕심은 항상 안 좋은 길로 이어지니까요…” 민호의 말에는 의젓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런 것 같아요. 인공적인 것은 때로 필요불가피한 것일 거예요. 좀 전의 예처럼.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너무 과도한 편리가 무분별하게, 실제가 아닌 것들에 주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송이의 답변에도 의연함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유익하겠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점점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의식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민호는 이제 이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방금 두 경우에 가짜의 것들이 선을 위해 사용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말을 하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커피 잔을 돌리던 송이의 눈에 커피의 작은 소용돌이가 선명한 한 점을 그리며 모이는 것을 보고 송이가 말했다. ‘가장 상투적이지만 또한 가장 강한 정답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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