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D 상영관은 온도와 냄새까지도 스크린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더 발전된 형태는 고글을 쓰고 실제로 자신이 영화의 장면 속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액션이나 공포물 같은 경우 여자들은 회피하고 있었다.
민호와 송이는 새로 나온 5D영화를 보기 위해 근처 영화관으로 갔다.
눈이 내리는 겨울 장면에 실제 눈 같은 것이 영화관 천장 어느 곳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합성 눈이지만 피부에 직접 닿으면 서늘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눈 오는 장면에서 영화관내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물론 실제 영화 장면 상의 온도보다는 높지만 어느 정도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의 온도였다.
송이가 몸을 움츠리며 양손으로 양팔뚝을 감싸 안았다.
순간 굉장히 고민해야 할 뭔가가 민호에게 주어졌지만 결단과 용기가 그로 하여금 굉장히 새로운 시도를 이끌어 내었다.
민호가 그녀의 먼 팔을 한 손을 뻗쳐 송이의 등 뒤로 조심히 감싸 안았다. 여름이어서 그들은 겉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송이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호의 행동에 놀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민호 역시 자신의 급작스런 대범함에 스스로도 놀래하며 여러 복잡한 생각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어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둘은 이 순간, 뭔가 거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며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닌 이 순간이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길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송이도 민호 스스로도 이런 급작스럽게 전개된 행동을 용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움 뒤에 곧바로 쫓아와 버린, 전혀 차원이 다른 격정 때문에 그들은 좀 더 무기력하게 복종을 강요받고 있었다.
송이의 팔은 매우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신에게 되뇌며 자신도 모르게 그 느낌을 읽고 말았다. 순간 민호는 갑자기 아랫부분이 묵직해짐을 느꼈다. 부끄러움에 몸의 모든 혈관들이 팽창하는 것 같았다. 온몸이 더워지며 땀이 모든 피부 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민호 팔이 송이의 팔 위를 덮자 그 손의 따스한 온기가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않고 심장까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송이는 그 순간 아랫부분이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양다리를 더욱 오므리었다. 그녀는 온몸의 신경이 살갗으로 뻗쳐 나오는 것 같을 것을 느꼈다.
둘 다 이 영화관의 어두움이 너무 고마웠다. 만약 환한 가운데 누가 정면에서 둘을 보고 있다면, 옴짝 달짝 못 하는 긴장된 몸에 두 눈이 우스꽝스럽게 커진 이 둘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으리라.
영화를 보고 나와 둘은 나란히 길을 조금 걸었다.
“과학 기술이 이만큼 발전한 것을 보면 참 놀라워요. 언젠가 이 과학기술이 진리라는 것을 마침내 알아낼 것만 같아요” 송이가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과학은 과학적 사실들만을 다루죠. 진리가 다 과학적 사실들로만 이루어졌다면 분명 과학기술이 진리를 알게 될 날이 오겠죠. 그런데 진리가 에너지, 열, 시간, 질량등의 과학적 사실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잖아요. 삶의 목적과 의미, 생명과 죽음, 신의 존재 여부등은 여전히 과학적 사실의 것들이 아니죠. 그것들은 정량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예를 들어, 생명이라는 것을 또 사랑이라는 것을 무게로 달거나 자로 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해서 민호가 말을 이어갔다.
“너에 대한 사랑이 이만해~”,라고 말하며 민호가 양팔을 크게 벌려 말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잴 수 없는 것이 잖아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둘의 초점이 정확히 맞추어졌고, 또한 심오한 깊이를 가진 빛들이 서로의 동공을 순식간에 치고 달렸다. 민호는 곧 접었어야 할 양 팔이 우주의 끝에 다다를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는 순간 재빨리 양팔을 접었다.
다소 어색한 공기가 둘을 감쌌다. 그리고 방금 전 영화관에서 있었던 서로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순간들이 각자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것들도 이 분위기에 적당한 가속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둘에게는 두 손을 꼭 잡고 길을 가는 것에 어떤 장애도, 숨김도, 부끄러움도 더 이상 존재치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