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제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배우들과 배경들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것들에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 기술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최상의 인물과 최고의 우상들을 만들어내며, 실제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장면과 배경도 스크린위에 구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꿈에 그리던 것들을 얻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좋아했던 아이돌이나 배우들의 스캔들, 지저분한 뒷이야기에 실망할 필요도 없게 됐다. 고쳐 지길 원했던, 좀 더 이랬으면 하고 바랬던 부분들도 완벽하게 수정된, 그야말로 초인간적이고 절대적인 우상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났던 우상들이, 아이돌들이, 스타들이 다시 화면에 나와 사라졌던 엔돌핀을 끄집어내어 사람들을 다시금 흥분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실제 스타, 배우, 아이돌, 모델들의 설자리가 점점 더 비좁아지고 있다.
그들의 연기와 모습과 퍼포먼스는 훌륭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심지어 실제 그들의 삶에 드러나는 불편하고 안 좋은 모습들은 그들의 자리를 점차 완벽한 가상의 인물들에게 내어 주고 있다. 이제 한 뛰어난 스타의 거대한 몸값은 최고의 인공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회사와 매니지먼트회사에게로 주어지고 있다. 스타성은 기술의 고급화와 가상 인물들의 이미지 관리에 달려 있게 되었다.
초초고해상도 화질과 AI로 구현되는 동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인물과 가상 인간이 나와서 연출해 내는 것을 거의 구분 못 하고 있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구분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눈은 결국 기술의 속임수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와~, 저 콧대며 깊다 못해 신비함을 주는 눈매 보세요!”
“…”
“아이큐도 굉장히 높데요. 또한 그 바쁜 일정에도 책은 한 달에 수십 권을 읽는데요.”
“…”
“저 머리 크기를 보세요. 주먹만 하잖아요?
그 말은 하지 말했어야 했다. 참고 참고 있는 민호에게 그것은 ‘너는 안돼’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호는 자신의 머리가 다소 큰 게 외모적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송이의 이런 말들은 민호가 품어왔던 직감,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거부하는듯한 느낌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정말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구나!’
“왜 저를 만나는 거죠?”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 탐구를 더 조금 해야 했다. 지나치게 감정이 실린 말투가 튀어나왔다.
“어? 이건 질투!”
송이의 대답은 무척 빨랐다.
민호의 대답은 훨씬 시간을 두고 흘러나왔다. 무거웠으며 낯선 사람을 대하는 투의 말투로,
“그럼, 질투 나죠. 나도 남자인데. 굳이 내 앞에서 다른 남자의 칭찬을 그렇게 해도 되나요? 어떤 관계를 떠나서 함께 한 사람에게 대한 예의도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예민하시죠? 저한테서 칭찬을 듣고 싶으세요?”
“그럼요. 뭐, 뭐… 좋은 친구한테 칭찬을 들으면 좋은 거죠” 말이 매끄럽지 않게 힘겹게 이어져가고 있었다.
“좋은 친구? 우리 친구인가요? 친구 정도밖에 아니었던 건가요?”
‘말장난이며 심리전을 쓰고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민호는 송이가 말의 유희로서 곤경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실망이네요. 우리는 친구 이상의 사이인 줄 알았는데” 송이의 말에는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친구 이상? 그게 어떤 거죠?” 반격의 기회가 왔다. 그리고 송이의 본심을 더 추궁하고 싶었다. 그는 더 집요해지고 싶어졌다.
“저에게 좋아하는 감정 이상의 것을 품고 있지 않았어요?” 송이가 물었다.
‘쉽게 가지 않는구나’ 민호는 대화가 옥신각신하는 것이 다소 짜증스러웠다.
“그럼 송이씨는 저를 좋아하는 아는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시 공을 넘겨주었다.
“네, 그럼요. 결혼할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배식 송이가 웃으며 말했다.
송이의 말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가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진지하셨으면 좋겠어요?” 민호가 단호히 말했다.
“진짜로요. 진짜로 사랑하는 상대로”
“정말요?”
민호가 송이의 눈을 직시했다.
‘이런 때, 장난이라니’ 다소 실망스럽다는 눈빛을 송이에게 보냈다.
송이도 민호도 둘의 눈을 직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장난치지 마’라는 것을 눈치챈 거였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민호의 두 눈을 바라보던 송이의 눈 빛이 분노와 두려움에 섞인 듯한 채,
“아니, 당신은 내 곁에 끝까지 있을 수 없어. 나와 함께 끝까지 가지 않을 거예요!”
차갑고 냉혹한 말을 남긴 채, 송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민호에게서 돌아섰다.
“아니, 잠깐만요. 갑자기 왜 이러시죠?”
당혹감이 조급하게 민호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빠른 걸음의 송이는 정녕 이 순간, 민호의 곁을 떠나고 싶은 듯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래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겨우 팔을 붙잡아 세운 뒤였다.
“이제 만나지 말아요 우리. 민호씨는 내가 원하는 상대가 아네요. 많이 부족해요. 정말 많이 부족해요. 나는 그 배우 같은 남자를 원해요!”
“나는 송이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무언가 숨기고 있잖아요 지금! 그게 뭐죠?”
“아니 숨기는 것 없어요. 그냥 이제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 졌어요!”
송이는 다시 붙잡아도 소용없을 거라는 확신의 여운을 남기는 발거음으로, 거칠게 앞으로 내달았다. 단념의 쇠사슬이 민호의 발을 텅 빈 거리에 붙들어 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