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후 만남

by nEvergreen

“출장은 어땠어요?”

송이가 출장에서 돌아온 민호에게 물었다.

“네 좋았어요. 일도 잘 됐고”라고 말하는 순간. 그 페미노이드가 머릿속에서 떠 올랐다.

뭔가 다 말을 못 하고 숨겨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아무튼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남에게 숨겨야 할 것은 분명 떳떳하지 못한 것이니까. 그리고 상대가 악한 존재가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은 신에게로부터 숨어야 하지 않을까? 부디 나를 찾지 말기를.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신에게서 멀어졌다보다.


송이가 말을 주저하는 그 짧은 순간에 민호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굉장히 심오한 생각들이 오갔다. 하나의 사소한 꺼림칙스러운 것이 무엇이길래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또 생각이 깊어졌다. 얼른 이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민호는

“송이씨는 뭐 하며 지냈어요 일하는 것 빼고? “

“저도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고…”

말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써니 집에서 봤던 휴머노이드 가정부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은 이상스레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송이는 무심결에 민호를 볼 때마다 그 휴머노이드가 자꾸 떠올랐다. 속으로 송이의 마음은 지옥을 거니는 것 같았다. 떠오른 생각을 지우려 하면 더 또렷하게 그 벗은 몸과 중요 부위가 더 자세히 떠올랐다. 이제 송이는 그 친구 집에 갔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민호는 송이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볼 때마다 그 호텔 페미노이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무시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더욱 그 페미노이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호는 페미노이드 윈도를 연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생각이 겨우 뱀 꼬리 같은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 감을 느낄 때 민호가 재빨리 물었다.


“친구들 하고는 뭐 하면서?”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은 송이를 다그쳤다.

“식사도 하고 친구 집에 있는 휴머노이드 가정부 얘기도 하고…”

‘휴머노이드 가정부!’

말보다 생각이 앞섰다. 자신이 경험한 그 섹스봇이 민호의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며,

“요즘은 휴머노이드도 인기라죠? 송이씨는 만나본 적이 있어요? 아니, 가져본 적은 있어요?”

뻔뻔스러움을 갖고 민호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니, 아니요! 아니, 저를 어떻게 보고?”

정색하며 대꾸하는 송이의 말은 유난히 과장스러웠다. 그러면서,

“사실, 돈이 없어서지… 크크”

“아니, 그걸로 뭐 하게요?” 민호가 되물었다. 농담일 거라 생각하며 자신도 장난스럽게 대꾸하였다.

“친구들 얘기 들으니, 아주 편하대요. 이것저것 시켜 먹고, 일종의 보디가드도 되고, 그리고 밤일에도… 하하” 송이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했다.

“거봐, 거봐, 여자들도 똑같다니까.”

“그럼 당연하죠. 가정부라고 다 여자휴머노이드만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요즘 호텔에는 섹스봇이라고 여자 손님이 묵으면 남자로봇인가 휴머이드가 있는 방을 준다는데…. 맞다! 민호씨가 묵은 호텔에도 그런 것이 있었겠네! 맞죠?”


드디어 사형집행장에 도달했다.

“당연히 있었죠. 그러나, 저는 안 꺼냈어요.”

뻔뻔함과 구차한 설명을 이어가는 것을 막는 작은 지혜를 찾는 사이에 그렇게 말했다.

“정말 안 했나 보네. 안 꺼냈다고 말하니… 시치미 떼려면 어설프게 안 했다고 말했을 텐데.”

뜨끔했지만, 송이의 혜안에 감사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구석구석 보거나 만져보거나…”

“아이, 왜 자꾸 그러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요”

“그걸 믿으라고요? 모든 것을 동의한 절세의 미인이랑 단둘이 있었으면서?”

“송이씨는 그럼 그런 상황이면 할 거예요?”

“네! 왜 그걸 마다해요”

“정말! 농담 아니죠? 와~ 송이씨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 뭐가 문제죠. 사람도 아니고, 그러라고 만들어진,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데”

“송이씨는 진실을 몰라요. 그럴 것 같죠. 실제 맞부딪치면 못 해요. 너무 사람 같아서.”

결과적으로 이실직고가 되고 말았다.

민호는 사실 그대로를 시간 순서 하나하나까지 들추이며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중간중간의 송이의 비웃음과 간간의 실랑이와 송이의 주먹질이 있었다. 둘은 그렇게 장난스러운 옥신각신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민호가 말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 ‘송이씨의 얼굴이 떠 올랐다는 것. 그리고 많이 보고 싶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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