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에게 커다란 벽면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민호가 거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거울 옆 터치 패드에 문구 하나가 고이 숨겨둔 것을 조심스럽게 내 보이듯 나타났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관계를 위해.'
그리고 작은 글씨로 몇 줄의 설명이 문구 아래에 있었다. 민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충 읽고 샤워실로 향했다.
이틀간 출장으로 호텔에 묵게 된 민호는 샤워를 한 후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무얼 하며 쉴까 궁리를 하느라 순간의 멍 때림이 있었다.
저녁 7시경. 저녁 식사 직후라 시간이 많이 남았다.
여러 겹 접힌 디스플레이 판을 꺼내 벽에 붙인 후, 게임을 몇 번 하였다. 역시 같은 디스플레이어로 뉴스도 보고, 시시콜콜한 SNS도 뒤적거렸다. 이후 지루함이 몰려왔다.
그런 이후 자꾸 그 벽면 거울에 시선이 돌아갔다.
짐작이 갔지만, 호기심은 기어코 그로 하여금 작은 글씨의 설명을 읽게 했다. 이윽고 민호는 안내에 따라 결재를 하였다.
순간 거울은 그대로 유리창이 되었다. 유리창으로 변하는 순간 창 너머로 사람이 보였다.
민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것을 민호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페미노이드. 물론 일반 페미노이드보다 한 참 아래 등급인 그저 욕구 충족용에 불과한 성관계용 로봇.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키패드 위 지정된 곳에 손가락 갖다 대니 회전 판이 돌며 다른 페미노이드가 나타났다.
또 한 번 터치했다. 이렇게 3번 더 하니까 아까 맨 처음의 페미노이드가 다시 나타났다.
모두 4 종의 페미노이드. 각기 다른 옷들을 입고 있었고 그중 하나는 비키니 차림도 있었다.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다가왔다.
다들 사람 같다고 했다. 워낙 많이들 얘기하고 친구들 한테도 여러 번 들었다.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위에 시대감을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더해져 갔다.
‘정말 사람 같을까?’
무엇보다도 그것이 궁금했다. 왜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열광하며 빠져드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더 결재하려는데 망설여졌다. 유리창을 열려면 결재를 해야 하는데 이번 결재는 거의 호텔 방값 수준이었다.
‘요즘 호텔은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는구나.'
생각하고는 그래도 얼마나 정밀한지 과연 실제 같은 지의 호기심과 이성의 벗은 몸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서인지 이번엔 성적 욕구가 더해져 민호로 하여금 강한 실행을 요구했다.
결재를 하였다.
순간 실수를 하나 한 게 떠올랐다.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이것저것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라 무심결에 바로 눈앞에 있는 페미노이드를 선택해 버렸다.
진주빛 블라우스에 잿빛 미니 스커트를 입은 페미노이드.
‘왜 하필 이것을 택했을까, 좀 더 신중히 생각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여기는 고급 호텔이 아니어서 이러한 페미노이드를 유리창 박스에서 꺼내 들어 직접 들고 움직여야 했다. 다른 고급 호텔은 페미노이드가 어색하지만 걷기도 하고 다양한 동작과 어느 정도 대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민호의 것은 사실 페미노이드라 말하기가 민망할 수준의 것이었다.
민호는 여러 생각 속에 갇혀 있느라 그 페미노이드를 호텔 방에 가운데 한 참 서있게 하였다.
피부를 살짝 쓰다듬으며 만져 보았다.
체온이 느껴졌다. 팔 언저리를 검지 하나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갈 때 머릿속에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
충격은 계속되었다. 팔뚝 위에 솜털들이 나 있었고 아니 심겨 있었고, 가까이 가서 쳐다보면 정교하게 구성된 땀구멍들도 보였다.
순간 고개를 들어 로봇의 얼굴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할 뻔했다. 마치 완벽한 연기자가 자신을 속이고 로봇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장소를 잘 못 찾은 긴장감과 두려움이 민호를 찾아왔다. 이 낯선 불청객을 일시에 무시한 후 로봇의 눈을 가까이서 보다가 살며시 아래로 눈길을 내렸다.
하얀 블라우스 안으로 살짝 드러난 가슴골이 드러나 보였다. 아주 본능적으로 블라우스에 손가락을 끼워 앞으로 살짝 당겨보았다.
지금처럼 본능에 강하게 충실했던 적이 일생 가운데 흔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의아스러운 행동을 하는 스스로를 비꼬면서 민호의 진행은 계속되었다.
과장되게 크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의 하이얀 살 둔덕이 브래지어 위로 드러나 있었다. 이성과 감정의 알 수 없는 다툼 속에 감정이 다소 승리를 거두고 있을 즈음에 다시 이성의 강한 역습이 들어왔다.
혹시 이 로봇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내려 보고 있지 않나 생각되어 얼른 고개를 들어 로봇의 눈을 쳐다보았다.
틀린 예측인 줄 알면서도 조심스레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약간 미끈한 기름기 또는 화장기가 느껴진다고 생각되었을 때,
“아~~!”
페미노이드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소리를 내었다.
민호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로봇은 다시 그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옅은 미소의 원래의 모습대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외부 신체적 자극에 대한 프로그램화된 반응의 일부였다.
본능은 자연스럽게 이 로봇을 안아 보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졌다. 이 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어색한 불편함과 두려움도 느껴졌다. 무언가 처음 것을 할 때 나타나는 속성의 것들이 민호의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붙어 다녔다.
일말의 긴장감, 두려움,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욕구를 이루어가는 희열감…
민호는 로봇의 어깨 위로 팔을 감아 살며시 안아 들어갔다. 몸을 밀착할수록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몸의 모든 신경들이 요동치며 곤두세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 민호는 자신의 몸을 얼른 뒤로 뺐다.
로봇이 진짜 사람과 닮을수록 이런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호는 자신의 행동에 재판정으로부터 최종 판결이 통보됨을 느꼈다.
‘만약 이 로봇이 백화점 진열대의 마네킹 같은 정도라면 덜 죄책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로봇이 진짜 사람 같음을 느끼며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나의 욕심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멈춘 행동에 이성적 해석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동의한다든가 하는 자의적인 의지가 없는 로봇 상대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만, 민호에게 이 로봇은 그냥 기계가 아닌 사람 같았다. 너무나 사람 같았다.
그리고 로봇의 모델이었을 진짜 사람의 모습이 로봇의 얼굴로부터 그려질 때, 윤리적 찔림은 그의 머리에서 끌려져 나와 심장 깊은 속까지 쳐 내려갔다.
‘인격일 수 있는 남의 몸을 돈으로 사고 노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원래 그러라고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진짜 사람 같은 이것은 이런 의식을 더욱 과하게 민호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의식과 윤리적 고민 어느 사이에서 인가 송이의 모습이 떠 올랐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민호는 얼른 그 로봇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 유리창을 닫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