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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프 Oct 31. 2019

<윤식당>처럼 살아요

어쩌면 누군가의 로망일지도 모르는 삶.

몇 년 전 방영된 tvN<윤식당>이란 프로그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온 해외에 산다는 꿈과 사장님이 된다는 로망이 한데 합쳐져 인기를 누린 게 아닌가 싶다. 이 말대로라면 나와 남편은 지금 그들의 로망대로 살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나 역시 회사를 다닐 때 외국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사는 여유 있는 삶을 갈구했으니 말이다. 


남편과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인도네시아에서 3년, 현재는 대만에서 ‘서울치킨’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실제로 <윤식당>이 방송되었을 땐 꽤 많은 매체로부터 연락이 와 인터뷰를 했고, 그 기사가 네이버에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길에서 "네이버에 나오신 분 맞죠?"라며 알아보는 일도 있었다.


해외에서 취업도 아닌 창업을 선택한 데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남편이 출장 차 들른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음식을 먹게 됐는데, ‘코리안 푸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나온 음식은 전혀 딴판인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이 사건은 안 그래도 요식업에 관심이 많던 남편에게 충격을 주었고, 셰프라는 제2의 꿈을 실천토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셰프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고심 끝에 퇴사를 선택했고, 인도네시아에서 5번째로 큰 스마랑(semarang)이라는 도시에 첫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었다. 




처음 오픈하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룰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손님이 없으니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직원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해도 알겠다는 대답만 하고 하지 않기에 솔선수범하여 화장실 청소를 했더니, 그 일은 ‘사장이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할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피크타임에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사장만 바쁠 뿐, 정작 자신들은 바쁠 게 하나 없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지점을 거느린 스타벅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인도네시아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가 나오기까지 20분이 걸린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비단 우리네 사정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전기 수급 또한 원활하지 않아서 정전도 많이 된다. <윤식당>에서 배우 이서진이 믹서기를 사용하다 정전이 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는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다. 한번 정전되면 3~4시간은 기본인데, 하필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에 정전이 되어 버리면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난다.


마음고생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손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디 새로운 음식점이 생겼다 하면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친구나 가족들이 맛있다고 하면 그제야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처음엔 손님들을 대상으로 시식 행사를 많이 했다. 오는 손님들에게 메뉴를 다양하게 선보이고, 그들의 의견에 따라 맛을 가감하면서 맛을 조절한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닭만 몇 트럭. 이제 좀 이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되었는지 손님도 많이 찾아오고, 프랜차이즈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인도네시아 스마랑 시내에 서울 치킨이 3개 더 생겨났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람과 사진을 찍고 싶어 하고, 어딜 가든 아는 척을 한다. 우리 부부 역시 그런 대접을 받았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뭔가 유명인사가 된 듯 특별해지는 듯한 느낌도 나쁘진 않았지만 외국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 사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을 때도 많았다. 비자도 매년 갱신해야 했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 외국인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ex. 영어 같지만 영어가 아닌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로 된 수십 장의 서류를 처리해야 한다든지, 예고도 없이 가게 앞 하수도 공사를 시작해 영업을 방해한다든지 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럴 때마다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검은돈(aka. 뇌물)이 들어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처리는 더뎌서 언제까지 해결된다는 보장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마냥 기다려야 했다. 


생활비도 그리 싼 편이 아니었다. 쇼핑몰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이라도 한번 하면 한국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비용(한화 3~5만 원)이 나왔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도 한화 6~7만 원은 금방이었다. (그러니 동남아에서 200만 원이면 황제같이 살 수 있다는 말은 믿지 말아라) 이동할 때마다 드는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자가운전은 꿈도 꾸지 않았다. 도로의 무법자들이 가득한 이 곳(중국 저리 가라 할 수준)에서 운전대를 잡는 것은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드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외국에서의 삶을 고집하냐고? 한국에서의 삶보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질 수 있어서다. 한국에서는 일한다는 이유로 주말도 없이 살아야 했고, 쉬는 날에는 오롯이 휴가를 떠나기보다 아프지 않고 일하기 위해 병원 투어를 하고 다녔다.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병을 얻었고, 나의 직장 동료들은 번아웃 증후군,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다 결국 퇴사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을지 몰라도 정신은 피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살게 된 이후로는 심적인 부담이 많이 줄었다. 근무 시간도 확연히 줄었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어서 외국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한국에서 바쁘게 사는 삶에 질렸다면, 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살지 않게 해주고 싶다면 ('주저 말고 떠나라'는 차마 못하고) 한 달이라도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저지르는 것이 낫고, 상상만 하는 것보단 일단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게 경험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조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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