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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Apr 15. 2024

가지치기

남천나무의 소생

  햇살집에 다녀왔다. 생명의 기운을 품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시골집엔 손이 갈 일이 많다. 이번주 미션은, 포천에서 뽑아온 에메랄드그린을 옮겨 심어 주는 일이다.


   볕에 서면 여름이 느껴지는지라, 그늘을 찾아 자리 잡아 차근차근 나무를 옮겨 심었다. 가끔 멀리 둔 시선에 만개한 벚나무가 걸려들었다. 아름다웠다.


   줄지어 세운 화분에 듬뿍 물을 주었다. 꼴깍꼴깍 물을 삼키는 것이, 잘 자라겠다. 햇살집에 온 후 바람에 쓰러져 며칠 엎어져 있다 당최 기운을 못 차리는 남천과는 달랐다. 우수수 잎을 떨어뜨리던 남천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손 닿는 곳마다 줄기가 떨어져 나갔다.

 

   그늘에 세워둔 아픈 남천에게 물을 주다가 새잎을 발견했다! 지난번 가지 정리를 할 때 미련이 남아 남겨둔 줄기들은 처절하게 시들어갔다. 새잎을 보고 용기가 생긴 나는 과감하게 마른 잎들을 잘라주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에 엎어져 며칠을 보냈으니, 남천 입장에선 살고자 하면 잔잎을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미련이 남아 남겨둔 말라비틀어진 줄기는 새잎이 날 자리만 차지할 뿐이었다.

 

   문득 나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에 차마 잘라내지 못한 아픈 시간들은 줄곧 나를 괴롭혀 왔고, 다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잠식했었다. 너덜너덜해진 그 마른 가지를 잘라내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남천은 새순을 뿜어 낼 것이다. 날려 온 꽃씨를 자갈 위에도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이 봄이니 말이다. 찾았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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