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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May 27. 2024

잊고 살던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의 멘토

   

   낯선 프로필을 한 카톡알람이 떴다. 이전 회사의 직속 후배였다. 이직한 직후에는 업무 때문에 종종 연락이 오곤 했는데, 벌써 1년이 넘었다. 한해를 돌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업무가 있었을까.


 - 고민이 있는데, 생각나는 여선배가 대리님 밖에 없어서요...


   여선배라, 이놈의 꼰대 아저씨들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후배의 말에 오만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 낸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을 피해 가지 않은 집단이긴 했지만, 지금도 그리울 만큼 정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대리님 저 잘하고 싶어요.


   그녀의 고민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잘하고 싶단다. 방법을 모르겠어서 그 모든 일을 해왔던 대리시절의 나에게 묻고 싶어 찾아왔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다. ‘할 만큼만 하지 뭘 자꾸 잘하고 싶어 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찼지만 꼴딱 집어삼키고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업무 분장표를 만들어 보라는 둥, 쉬운 일부터 처리하라는 둥,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 보라는 둥... 10년 차 직장인 나에게는 이 정도가 팁이라면 팁인데, 그녀가 듣고 싶었던 조언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귀갓길은 평소보다 고됐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이를 낳은 후 내 역할은 엄마였다. 과장직함은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필요했을 뿐이다. 회사일은 오로지 책임감과 자존심으로 해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딱히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못하겠는 일은 없다. 그게 10년의 내가 만들어 온 결실이라면 결실이었다.


   그날 밤 나는 울긋불긋했던 사회 초년생의 나를, 나에게도 있었던 그 푸른 고민의 시간들을 찬찬히 추억했다. 치열했던 지난날은 나를 지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 정도면 잘 해냈지, 찾았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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