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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개굴 Sep 04. 2023

골목길 쓰기(1)

후암동

일어서서 살지 않으면서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내 생각이 흐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를 비롯해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걷기 예찬론자이듯 나도 걷기를 사랑한다. (은근슬쩍 끼워넣기?)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춥지만 않다면 두 시간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 만 보 이상 걷지 못한 날엔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쉬는 날엔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기로 다짐하지만 저녁나절이 되면 결국 참지 못하고 걷기 위해 나간다.

나에게 걷기란 두 발로 길에 글을 쓰는 일이다. 내가 걷기 전까지 길은 백지다. 종이에 생각을 표현하는 게 글이라면 길에 생각을 남기는 게 걷기다. 길에서 한 생각은 휘발되지 않고 발자국으로 새겨진다. 나는 길 위에서 한 생각엔 물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길도 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서 봤을 때와 직접 걸으며 느낄 때와 완전히 다른 길이 된다. 걷지 않은 길은 아직 쓰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글이 잘 써지는 공책이 있는 것처럼 걷기만 해도 생각이 퐁퐁 솟아나는 길이 있다. 바로 골목길이다. '오래된' 골목길이라면 더 좋다. 골목길에선 고층 아파트에는 없는 '때'가 있다. 때는 흠집 속에 낀다. 매끄럽고 균일한 것들, 먼지에게 한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는 것들은 어울려서 뒤섞이는 법을 모른다. 고층 아파트의 매끄러운 유리창에서는 햇빛도 튕겨나간다.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따라가노라면 생각도 자유자재로 뻗는다.


서울엔 오래된 골목길이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도심이 형성된 곳이라 그런지 지방보다 더 예스러운 정취가 남아있는 곳이 많다. '부정부페'와 같은 재치 있는 간판이 걸려있는 식당이나 사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빨랫줄에 당당하게 속옷을 걸어놓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길 말이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후암동이다. 후암동을 처음 알게 된 건 여섯 명의 건축가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후암'의 공간들 중 '후암연립'이라는 공간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부터이다. 일찍이 후암동의 매력에 빠진 건축가들이 서재, 카페, 목욕탕, 거실 등의 공간을 만들어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누구에게나 열린 '마을'이라는 모델을 실현하고 싶어 도전하게 된 프로젝트라고 한다.

후암동을 점찍어두고 틈만 나면 '직방' 앱에 들어가 시세를 검색했다. 재개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집값이 뛰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퇴직금을 헤아리며 손톱을 뜯던 날이 지나고 서울에 온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드디어 후암동을 밟았다.




환승을 피하기 위해 마들역에서 노원역까지 걸어가 그대로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도착 시간까지는 약 30분. 30분은 대전지하철로 따지면 노선의 양 끝인 반석역에서 대전역까지 가는 긴 시간이지만 서울에 온 뒤 30분은 어느새 기본값이 되었다. 쌍문, 미아사거리, 혜화, 동대문, 충무로, 명동, 서울역… 비교적 눈에 익은 정거장을 지나 숙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요즘엔 보기 힘들어진 동네 서점이 보였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말 그대로 시간 여행으로 8, 90년대 서울에 당도한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음이 동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도 재개발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걸 보여주는 각종 현수막과 추진위 건물 때문에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의문이 들었다. 철저하게 이방인인 나는 재개발을 반대할 권리가 없다. 나 좋자고 유지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흔적들을 몽땅 지우지 않길 바라며 계속 걸었다. 멋스러운 바버 숍도 지나고 정감 있는 카페도 지나는 동안 '후암연립'에 도착했다.


이 정도 메뉴면 매일 가도 되겠는데?


왠지 핑크색으로 염색한 시츄를 키우는 원장님이 계실 것 같다.


유지와 개발 사이의 균형을 찾으면 좋으련만.


'후암연립'의 외관.


친근한 벽돌건물에 쨍한 파란색 의자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블루베리 아인슈페너를 시킨 후 '후암연립 안내서'라는 팸플릿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풍부하게 얹어진 달달한 휘핑크림 속에 상큼한 블루베리가 든 아인슈페너도 후암동처럼 내 취향을 저격한 맛이었다.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는데 서울에서 살 집을 찾다가 보았던 빌라가 후암연립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신기했다. 혹시나 저 집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창밖을 구경했다.


후암동은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동네입니다.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이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후암동은 남쪽으로는 용산 미군기지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주택과 남산 그리고 구릉지형이 만들어내는 경관이 후암동의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팸플릿에 쓰인 글을 읽으니 더더욱 후암동이 좋아졌다. 음료를 다 마시고 다시 걸으러 나왔다. 골목길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동네 꼬마들이 "데덴찌"라고 외치며 편을 가르며 놀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고 걷는 애들만 보다가 생소하고 정겨운 장면을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나 같은 백수들만 빼고 모두 일할 시간인 평일 오후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아주머니들 빼고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요즘엔 내가 백수라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퇴사할 날만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렸는데 회사의 노예로 산 세월이 꽤나 길었던 탓인지 얼마나 놀았다고 벌써 조급해졌다. 부모님도 은근히, 아니 대놓고 재취업을 바라고 있다. 서른 살인 딸내미가 아무 계획도 없이 덜컥 서울에 온 게 영 마뜩잖은 게 분명하다. 부모님 앞에선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 나도 불안하다. 그토록 꿈꿔온 서울 생활이지만 아직은 서울 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걷지 못하고 보기만 하는 길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떨치려 더더욱 열심히 담벼락과 계단을 누볐다. 서울 한복판을 걷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싶었다. 팸플릿에 쓰여 있는 설명처럼 정말 후암동은 지형이 특이한 동네였다. 오르막길이었던 것 같은데 내리막길이 나오고 내리막길이었던 것 같은데 오르막길이 나왔다. 안 보였던 남산타워가 번쩍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샌가 서울역 귀퉁이가 보이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한 상사가 말했었다. 삼십대면 이제 안정적으로 살 때가 아니냐고. 전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살았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걸 참았다. 안정적인 길,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언제나 오르막길만 있는 길도 언제나 내리막길만 있는 길도 마찬가지다. 오르막길에서는 열심히 오르고 내리막길에서는 쉬엄쉬엄 걷고 싶다. 같은 풍경만 보이는 공원은 많이 걸어도 열 바퀴만 돌면 지겹다. 길이 달라야 오히려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후암동은 나에게 곧은 길만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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