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부모님이 살고 있는 금산에 갔다. 대전에서 금산은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 서울에서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사람으로 바글대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서있는데 괜히 낯설었다. 아마 가족들을 전보다 자주 볼 순 없을 테다. 집에서 나와 부모님과 따로 산 지 벌써 칠 년 차인데 이제야 진짜 독립을 한 것 같다.
본가에 가면 꼭 아빠의 서재에 들린다. 서재에는 가족의 역사가 담긴 앨범과 나와 동생의 민망한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학창 시절 줄기차게 읽었던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하나씩 들춰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진한 90년대식 화장을 하고 억지로 캉캉춤을 추던 유치원 시절의 나를 보며 킬킬거리다 중이병이 걸리기 전 엄마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 저 때가 더 성숙했던 것 같아 숙연해진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썼던 습기 가득한 시를 보고 얼른 덮어버린다. 그래도 패기 하나는 인정한다.
'추억 더듬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엄마가 쓴 육아일기를 읽는 것이다. 육아를 하다 힘들었는지 비록 초반에만 쓰고 중간에 끊긴 일기지만 나에게는 더없는 보물이다. 똥을 쌌다던가 잠투정을 했다는 평범한 이야기에서도 엄마의 사랑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신기한 기록이다. 수십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쿡쿡대며 한 장씩 넘겼는데 이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1993년 3월 30일에 나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돌아와 잠투정을 했다. 이제 보니 대전보다 서울이 더 편안하고 좋다는 말은 당신의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었던 엄마의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스물네 살에 나를 낳았다. 아기가 아기를 낳았으니 얼마나 엄마아빠 품이 그리웠을까. 홀로 나를 안고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갔을 엄마를 상상하니 코끝이 시큰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대변해서 칭얼댄 효녀? 아니면 정말로 서울이 더 편하고 좋았을 거라는 엄마의 추측이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서울에 아주 잠시 살았는데도 사는 내내 서울을 그리워했으니까. 사실 해외로 입양 간 입양아들이 성장한 후 한국을 찾고 싶어 하는 사연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완벽하게 공감할 순 없었다. '저 나라에서 산 세월이 훨씬 긴데 지금 사는 나라가 고향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서울에 갈 때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여겼다. 서울에서 놀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야 할 때마다 묘하게 슬펐다. 대전에 내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데도 그랬다.
어떤 이들에겐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별자리를 믿는 사람인데, 이것도 뿌리와 관련이 있다. 별자리는 생명이 태어나는 그 시간에 어떤 별들의 기운을 받냐에 따라 정해진다. 12월 중순에서 1월 중순 사이에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염소자리'다. 아주 추운 한겨울에 태어난 건데 그래서 그런지 늘 따뜻함과 밝음을 동경했다. (대학생 시절 쓴 시에도 '비가 오지 않아도 온 세상이 젖어있는 날 태어났지'라는 자의식 가득한 구절이 있다) 여름에 태어난 사자자리 사람들에겐 생기가 배어있고 가을에 태어난 사수자리 사람들에겐 낭만이 배어있다.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걸 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쌓인 데이터베이스이다. 성격은 천차만별이라도 별자리가 같다면 갖고 있는 에너지의 색이 비슷했다. 별자리의 신빙성에 대해 얘기하자는 건 아니고 그만큼 태어난 순간 결정되는 환경이 살아가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향을 향해 3800킬로미터를 헤엄치는 바다거북처럼 인간의 본능에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나 보다.
1993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23년에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왔다. 드로잉을 배울 때 미술 선생님이 해준 말이 있다. 열명 중 아홉 명은 나무를 그릴 때 기둥부터 그리지만 사실 뿌리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려야 나무를 더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리로 돌아온 지금, 눈앞에 백지가 펼쳐진 기분이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인생이 180도 바뀌는 건 아니더라도 싱그러운 나뭇잎이 돋아날 때까지 뿌리부터 찬찬히 인생을 다시 그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