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와 노원구민센터에서 요가를 배운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화목 요가 B반에서는 내가 제일 아기다. 창문으로 빼꼼 보이는 도봉산을 보며 호흡에 집중하면 그렇게 맑아질 수가 없다. 대전에서도 회사를 다니면서 요가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여유가 부족했다. 자세를 취하면서도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지금은 고정적인 일정이 요가밖에 없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배우고 온다.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차분하고 멋지다. 무엇보다 요가에 진심인 게 느껴진다. 특히 목소리가 좋으셔서 듣다 보면 ASMR을 듣는 것 같다. 늘 명상을 하고 요가를 시작하는데 나긋나긋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말을 해주신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오늘은 실내마스크가 해제돼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요가를 했다. 아직 첫날이라 어색해서 그런지 벗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코로나 후에 요가를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마스크로 거르지 않고 코로 직접 호흡했다. 요가에 발만 담가본 초보자지만 요가는 기묘한 자세를 얼마나 잘하는지 겨루는 게 아니라 호흡이 전부인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호흡이 곧 명상이고 명상이 곧 평화이다. 마스크를 끼고 요가를 할 때마다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답답했다. 그럼 진짜 세상, 진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맨 얼굴로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몸속으로 들어간 공기가 온몸을 노크하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깨우는 듯했다.
선생님이 1월의 마지막 수업이니 '태양 경배 자세'를 쉬지 않고 연속으로 10번'만' 해보자고 했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양 경배 자세'는 요가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하는 기본자세이다. 많이 해본 자세기 때문에 까짓 거 10번쯤이야,라고 시도했다가 큰코다쳤다. 발끝이 너무 앞에 가있거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멈춰서 처음부터 다시 했다. 동작 하나하나 꼼꼼하게 익혀서 하니 영하의 날씨에도 다섯 번만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10번을 끝마치자 몸에 쌓인 찌꺼기가 빠져나가고 개운함이 들어찼다.
1월엔 요가 말고도 몸을 많이 썼다. 단 3번만 빼고 아이폰에 지정해 놓은 운동량 목표를 채웠다. 하루 평균 6.5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다. 많이 걸은 날은 14킬로미터도 걸었다. 일상 속에서 근력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서 14층까지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습관이 되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답답하다. 계단을 오를 땐 가슴을 펴고 허리를 세우고 발바닥을 딛는다. 시간 대비 칼로리 소모가 큰 아주 효율적인 가성비 운동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숨이 가쁠 정도로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심장병 예방에 좋다고 한다.
회사에 다닐 땐 짬 내서 걷는 시간을 내기 그래서 출퇴근길만 반복해서 오갔는데 서울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다. 두 눈과 두 발이 몹시 바쁘다.
엊그제는 마들역에서부터 노원, 중계, 하계, 태릉입구역까지 쭉 걸었다. 지하철 노선에서 줄지어 보던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걷다가 건축상을 받았다는 북서울 미술관도 발견하고 경춘선길도 만났다. 마들역에선 꿀꿀한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태릉입구역에 다다르자 어느새 기분이 산뜻해졌다.
플랭크 1분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는 것도 성과다. 샘이한테 매일매일 플랭크를 했는데도 복근이 안 생긴다고 하소연했다가 샘이가 다 합쳐도 30분이니 좀 기다리라고 해서 수긍했다. 30년간 물렁했던 뱃살이 30분으로 단단하게 바뀌길 원하다니.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다. 1분이라 부담이 없고 나름 속근육이 잡혀가는 게 보인다. 과식해도 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아,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면 1분이었는데 요새는 그러고도 30초 더 할 수 있다. 일어나자마자 안 하면 찝찝하다. 확실히 습관이 됐다. 중반엔 어째 배가 더 나오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에 일어났는데 무언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아도 장기들이 균형 잡혀서 배열된 느낌이랄까? 2월에도 '태양 경배 자세 10번'과 더불어 꾸준히 하려고 한다. 다른 데는 살쪄도 배가 살찌는 건 '당신은 끝났습니다'라는 선고 같다. 내 몸이지만 봐줄 수 없다. 얼굴에 살찌면 동안으로 보인다는 장점이라도 있고 팔뚝과 다리는 쪄봤자 거기서 거긴데 뱃살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푼다. 몸의 중심이니 튼튼하고 건강해야 한다.
30대가 된 후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흔하디 흔한 말을 실감하고 있다. 사실 퇴사를 해서 건강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땐 몸은 덜 썼고 마음은 지나치게 많이 썼다. 마음을 쓰고 싶은 존재와 일에 많이 쓰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안 써도 되는 대상들에게 썼다는 게 문제다. 그땐 그게 응당 겪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아니었다. 회사에 있을 때 나는 포토샵의 지우개 기능으로 문지른 것처럼 뭉개지고 지워졌다. 나는 언제나 집단의 훌륭한 바퀴였다. 나를 없애고 만든 연료를 들이부어 집단을 굴러가게 했다. 시동이 꺼진 채 집에 오면 지쳐 쓰러졌다. 교통사고가 심하게 난 폐차 직전의 차처럼 꾸깃꾸깃해졌다. 내가 다닌 직장이 심하게 악질인 인간이 있다거나 업무량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던 건 아니다. 그래서 더 버텼던 것이기도 하다. 다 그러고 사니까, 나 정도면 정말 괜찮은 거니까. 그러나 '그렇지만,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같은 접속사들이 차마 입밖에 나오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계속 웅얼거리다 종국엔 터져 나왔다. 원상복구가 필요했다. 직장을 관두고 나서 몸은 더 쓰고 마음은 쓸 데만 골라서 쓰면서 서서히 몸과 마음을 다리미로 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게으름의 손목을 놓아주기가 싫어. 돈에 내 삶을 팔기가 싫어. 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기조차 싫어. <메리 올리버>
나는 게으름의 손목을 꼭 잡고 있다. 비에 맞을지언정 우산을 사고 싶지 않다. 우산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으려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니까. 냅다 맞으려면 머릿속을 비워야 한다. 머리가 빠지면 어떡하지, 옷은 언제 말리지 걱정하면 비를 맞을 수가 없다. 실은 걱정을 하며 맞는 중이긴 하다. 빨리 크고 넓은 우산을 사고 싶기도 하다. 왜 우산을 안 사냐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옆사람들의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우산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 게으름의 손목을 더 꽉 잡는다. 게으름과 함께 빗 속에서 달릴 것이다. 실제로 빗속에서 달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직 없다. 그러나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몸은 비에 쫄딱 젖어 축축하고 무거운데 이상하게 정신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상쾌하겠지. 달리다 미끄러워 넘어져도 웃음이 터져 나오겠지.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진흙이 묻어도 비가 다시 씻겨주니까 상관없다. 웬만하면 이 달리기엔 완주가 없기를. 이제, 플랭크를 하러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