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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개굴 Sep 14. 2023

서울의 겨울은 왜 이리 추운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백수인데도 요새는 강제로 몸을 일으키게 된다. 긴급재난문자 때문이다. 연일 아침마다 영하의 기온을 알리는 알림이 삑삑 울린다.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는 혹독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거의 평생을 중부지방인 대전에서 겨울을 보내다 서울에 오니 '북쪽'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사뭇 실감 난다. 추워도 너무 춥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밖을 나서도 자잘한 유리조각이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다.

스무 살 겨울,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함께 명동에 갔었다. 새로 산 파스텔톤 니트와 회색 모직 코트, 청바지가 나를 둘러싼 전부였다. 한겨울에 얇은 스타킹을 신고도 거뜬했던 나이였다. 그러나 서울의 추위는 가혹했다.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패배했다. 심한 몸살에 걸려 놀다 말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후로 서울의 겨울을 다시는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오늘도 영하 20도의 날씨를 알리는 재난문자 탓에 일찍 일어났다. 외출도 삼가라니 별 수 없이 집에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보려고 미뤄놓았던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 겨울, 나는'. 날씨와 착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었다. 포스터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두 청춘 남녀가 있는데 어째서 제목이 '그 겨울, 우리는'이 아니라 '그 겨울, 나는'인지 궁금했다. 왜 인지는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말랑말랑한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차갑게 언 삶의 이야기였다.

원래 나는 소위 '노란장판 감성'의 영화를 사랑한다. '노란장판 감성'이란 가난하던 시절 집에 흔히 깔려있던 낡고 오래된 노란장판처럼 구질구질하고 신파적인 감성을 뜻한다.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신조어이다. 보통 그런 감성의 영화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뒷골목이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더럽지만 날카롭고, 처절하지만 아름답고, 퀴퀴하지만 찬란한 인물들은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노란장판' 위에서 인생이 무언지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런 감성의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은 그나마 전기장판이라도 깔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온기라고는 없는 바닥에 곰팡이까지 핀 노란장판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래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희망이라고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다-한 줄기 빛을 잃지는 않는다. 정말이지 한 줄기다. 그림자를 만들어낼 정도의 센 빛은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손차양을 할 정도의 빛만큼도 안 되고 진짜 그냥 딱 한 줄기 빛. 그 정도의 빛을 남자 주인공에게 비춰주며 영화는 끝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할 텐데도 화면을 보는 내내 눈을 질끈 감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꽃밭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제대로 두 눈을 뜨고 빈손으로 서울에 올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후기를 찾아보았다. 사람을 가장 치졸하게 하는 건 돈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 왜 제일 먼저 보이던지.

"네가 인생을 아직 덜 살아서 그래."

여자 주인공의 엄마는 힘든 길을 택하려고 하는 여자 주인공한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당분간 일 하고 싶지 않다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쉬엄쉬엄 살고 싶다는 나에게 말이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총 19군데에 이력서를 보냈다. 서울을 즐기면서 적당히 돈도 벌고 내 시간도 가질 수 있는 곳만 선정해서. 단 한 군데에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31살이라는 나이는 알바몬과 알바천국의 광고에서 보이는 희망찬 청춘의 모습에서 많이 멀어진 나이였다. 속된 말로 '대가리가 커질 대로 커진' 나이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나이가 29살이었다.


어제 도서관에 있는데 예전 직장 후배에게 연락이 왔었다. 서울에 있는 한 신문사에서 편집일을 하는 후배는 자기 회사에 다녀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신문 편집만 했다. 7년 간 두 곳의 신문사를 다녔다. 다른 분야의 일은 해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편집쟁이'가 되어있었다. 편집은 이제 그만 놀고 싶은 친구 같은 일이다. 애인이 아니라 헤어지자는 말도 못 하고 억지로 놀아야 하는 친구. 절교하자고 했다간 아쉬운 순간이 생길까 봐 억지로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 그런데 이상하게 궁합은 은근히 맞아서 싸우지 않고 꽤 즐겁게 노는 친구. 편집은 사랑하진 않는데 작별하기도 애매한 그런 친구였다. 그렇지만 서울에 오기로 결심했을 땐 정말 손을 놓기로 다짐했었다. 후배의 물음에 단칼에 생각 없다며 거절했다. 문자를 보내고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마저 읽다가 깜박 졸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드니 창가에 줄지어 배치된 의자가 어느새 꽉 차있었다. 내 옆의 젊은 남자도 한 손엔 책을 들고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자고 있었다. 퍼뜩 뒤를 돌았다. 열람실에도 사람이 많았다.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일까. 어떤 사람들이길래 수요일 오후 3시에 도서관에 와 있는 거지? 저 사람들도 돈을 벌지 않는 걸까. 그래도 잘 사는 걸까.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그래서 돈을 벌려고 공부라도 하는 걸까. 졸지 않으려고 고개를 휘젓다가 문득 '아, 돈 벌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캐럴라인 냅은 고독은 평화와 고요를 키우는 일이고 고립은 두려움에 굴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평화와 고요만 키우기에는 용기가 없다. 속박당했을 땐 그렇게 자유가 고프더니 자유를 가지게 되자 무서워졌다. 돈이라는 걸 벌기 시작한 뒤로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빵푼인 나날을 처음으로 겪고 있다. 남들이 취업에 뛰어들 때 자기는 취업이 아닌 취향에 뛰어들었다는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용기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책을 대출하고 나오자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 역을 빠져나왔다.


오늘 후배에게 다시 연락했다.

"이력서 언제까지 내면 돼?"

노트북을 켜고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이력서를 썼다. 성장과정, 장녀로 태어난 저는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재직한 아버지의 근면함과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일어나는 어머니의 씩씩함을 물려받아... 성격의 장단점, 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동차의 바퀴'같은 사람입니다... 수상내역,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최초예술지원 문학 부문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고... 아닌가. 박연준 시인도 취업할 때 시인이라는 이력이 혹만 되었다는데. 그런데 이거 빼고는 상 받은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고민하다가 창을 껐다.

합격하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일하게 된다. 엄마와 광화문 근처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나오다 한 신문사 건물을 보고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만약 합격하면 희망사항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찰나의 호기심이었다. 기사를 읽고, 제목을 달고, 지면을 꾸미듯 회사에서도 억지로 웃는 얼굴을 꾸미고, 주말만 기다리고, 야근을 하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간신히 글을 쓰려고 하는 일상은 찰나가 아니라 오래 지속될 것이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바뀐 게 뭐지? 결국 돌고 돌아 여기야? 서울에서는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살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나고 날씨는 여전히 춥다. 명랑하지 못한 은둔자의 겨울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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