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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S Mar 21. 2023

드라이버의 봄맞이

세차와 새 차 그리고 새 마음

봄맞이 세차를 했다. 작년에 차를 산 뒤 처음하는 세차였다. 손세차를 할까 하다 편하게 자동세차로 했다. 대신에 노터치 세차로 선택했다. 흠집이 덜 생긴단다. 돈 조금 더 내고 안도감을 샀다.


자동세차는 금방 끝났다. 드라잉존으로 갔더니 이른 아침인데도 세차장은 이미 차를 닦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한쪽에 주차하고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햇빛 아래 차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빗물 자국과 초보스티커 흔적은 말끔히 사라지고 새 차가 되었다. 금세 처음 봤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때 빼고 광 낸 모습을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 세차가 취미인 사람도 있다던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짜식, 고생했다!‘ 1년도 안되었는데 벌써 두 번이나 정비소에 갔다 온 녀석이다. 초보 주인 만나 참 고생 많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잘 버텼다. 너나 나나. 셀프세차장에서 기특함도 셀프로 챙겼다.




나의 첫 차. 내가 산 물건 중 제일 비싼 물건. 두발 달린 인간에게 나타난 초강력 부스터다.


이 부스터 덕분에 시간의 제약을 덜 받게 되었고, 행동반경과 생각 범위도 넓어졌다. 즉, 선택지가 많아졌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만족할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말도 있다. 수많은 것들 중 하나를 고른 뒤, 나머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후회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제한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차 덕분에 생긴 선택지는 앞서 말한 것과는 좀 다르다. 딱 한 가지만 고르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을 절약하고 운신의 폭을 넓혀 더 여유롭게 이것저것 해볼 수 있다. 안 가본 곳, 안 해본 일들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야 할까.


운전을 하고부터 동네를 벗어나 멀리 있는 카페와 수영장, 더 멀리 있는 산에도 쉽게 가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리프레쉬가 되기도 했다. 마음먹은 일도 좀 더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 고마운 부스터 덕분이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이다. 앞으로 낮의 길이가 더 길어지면서 더 환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차를 구석구석 닦으며 그간 쌓인 마음의 찌꺼기도 같이 닦인 것이라면 좋겠다. 새 차와 새 마음은 봄과 함께 가리라.


아직 베스트 드라이버는 아니다. 차츰 늘어나는 운전실력과 함께 점점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더 넓어진 반경만큼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좋은 신을 신으면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던데, 나의 부스터 신발은 앞으로 어디로 날 데려가 주려나! 봄을 맞이하니 마음이 새롭게 일렁인다. 이번 주말에는 새순 돋는 나무와 봄꽃 구경을 하러 멀리 떠나볼까 싶다.


새 신을 신은 마음으로 곱게곱게 운전해서 조심히 가야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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