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 맛을 잘 몰랐다. 특별한 커피 취향도 없었다. 원두가 고소한지 아닌지, 신맛과 탄맛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도 없었고 차이도 잘 몰랐다. 단지 아침마다 커피를 차게 마실지, 달달하게 마실지만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르곤 했다. 커피는 그저 내게 잠을 깨우기 위해 별생각 없이 마시는 필수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커피와 빵이 아주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나는 빵보다는 밥이고 커피는 커피일 뿐이라, 카페 맛집의 존재를 알고서도 심드렁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하늘이 유달리 푸르고 화창한 날이었다. 간만에 하루 연가를 내고 집에서 쉬면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마음도 여유롭고, 시간도 여유롭고 마침 날씨도 좋아 걸어가 볼 만한 생각이 났던 것일까? 주택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카페를 찾아가 보았다. 경사진 골목길 옆에 위치한 그곳을 보고 속으로 내뱉은 첫마디는 ‘이런 곳에 카페가 있었어?’였다. 붉은 벽돌로 뒤덮인 그곳은 주택을 개조하여 외관은 평범했고 이름 세 글자가 또렷이 박힌 작은 문패로 카페임을 알리고 있었다.
‘힙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속으로 내뱉은 두 번째 마디였다. 카페 안은 어둑한 조명 아래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과 빵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문 하나 사이로 별천지로 순간이동한 것 같았다. 카페에 오는 게 이렇게 어리둥절할 일이었던가 생각하며, 빵 몇 개와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빨대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 맛있다!’ 포크로 빵도 찍어 먹어보았다. ‘빵도 맛있네!’ 또 한 번 눈이 커졌다. 맛있는 커피와 빵으로 인해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한두 시간 머물렀지만 그 카페 덕에 그날 하루 전체가 특별해졌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이후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다. 어떤 날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카페에 들렀다 출근하기도 했다. 친구들이나 가족이 오면 제일 먼저 그 카페로 데려갔다. 책을 읽고 싶을 때도 그 카페로 향했다. 한동안 그곳은 나의 아지트였다.
무엇이 그 카페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우선 분위기가 좋다. 독특한데 편안하다. 바리스타들은 언제 가도 친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신경 쓴 듯 안 쓴 듯 인테리어도 멋지다. 조명도 딱 적당하다. 빵은 뭘 골라도 다 맛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커피가 맛있다. 그 카페는 산미 있는 원두를 쓰고, 매일 우유를 사용한다. 맘에 드는 커피가 생기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커피 분석을 한다.
산미 있는 원두로 만든 아이스라테. 이제는 내 커피 취향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른 카페에 가서 원두를 고를 때면, 산미 있는 원두로 선택하고 아이스라테를 시킨다. 그리고 자동반사적으로 그 카페의 아이스라테와 비교하게 된다. 취향은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이사한 후 멀어서 이제 자주는 못 가지만, 그 근처로 갈 일이 생기면 꼭 들리곤 한다. 그 카페는 내게 특별하다. 덕분에 커피 취향을 알게 되었으니까. 덤으로 취향은 확실한 행복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잠깐의 순간은 늘 어김없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날, 여유로웠던 하루 덕에 나는 평소 안 가본 길로 걸어가 내 취향과 만났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그 카페로 가는 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단지 내가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어쩌면 취향이 없다는 건 충분히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문득 나만의 취향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아이스라테’를 찾기 위해 여유를 갖고 새로운 시도들을 충분히 해보기. 올해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