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ohaS Mar 13. 2023

소탐대실 소실대탐

몇 년 전, 뉴욕 여행 때의 일이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뉴욕에 실제로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신나, 들뜬 표정과 발걸음으로 거리를 누볐다.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로 가득 찬 뉴욕은 패션의 도시 그 자체였지만, 며칠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식당 팁 문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는 돈이 많지 않기도 했었고, 그 시절의 나는 좀 쪼잔했었다. 팁을 주는 게 어찌나 아깝던지. 식당에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몇 푼 놓고 나오긴 했지만, 그날은 정말 팁을 주기 싫었었나 보다. 수제햄버거를 먹고 난 뒤 팁을 남기지 않고 식당을 나가기로 친구들과 합을 맞췄다. 후다닥 나서는데 뒤에서 점원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더더욱 빠른 걸음으로 길거리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휴우.” 식당에서 충분히 멀어지고 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돈 몇 푼 아꼈다는 재미와 동지애로 우리는 남은 오후를 더 즐겁게 보냈다. 그렇게 실컷 놀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내 목도리가 안 보였다. 며칠 전 큰맘 먹고 산 캐시미어 목도리였다. 방 구석구석 뒤져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금방 울상이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 두고 온 거야. 몇 번 매지도 않았는데..’ 전날 갔던 곳들을 차례차례 떠올리다 햄버거 가게에서 생각이 멈췄다. ‘아, 그때 점원이 목도리를 챙겨주려고 불렀던 걸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고작 팁 조금 아끼려고 비싼 목도리를 잃어버리다니.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식당에 찾아갔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며 혹시 목도리 분실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점원은 목도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너무 속상했다. 내 맘에 쏙 드는 목도리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샀던 매장으로 가서 똑같은 캐시미어 목도리를 다시 샀다. 돈 몇 푼 아끼려다 결국 나는 몇 배의 지출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네 글자를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소탐대실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소실대탐’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소실이 꼭 대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실대탐을 마음에 새긴 이후로는 눈앞의 작은 이익과 손해에 연연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일상의 사소한 일에 쉽게 동요되지 않도록,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바뀌기도 한다. 큰 손해를 보았을 때, 특히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을 때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끼던 목도리를 잃어버렸던 건, 옷에 관심 많았던 20대의 나에게 일어난 큰 사건이었다. 그때는 큰돈을 손해 본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목도리 하나 값으로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게 된 고마운 해프닝이다. 덕분에 내 삶에 소실대탐을 또렷하게 새길 수 있었으니까.      


일상에서 소소한 어긋남과 짜증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그렇지만 그 ‘소실’이 또 다른 ‘대탐’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털어내려 한다. 오늘의 속상함은 내일의 이로움이 될 수도 있다고 믿어보면서 말이다.







이전 02화 왜?라는 질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