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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S Feb 19. 2023

스무 살, 독립의 시작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짐을 한가득 싣고 학교 근처로 이사하던 날을 기억한다. 2월 말, 아직 추위는 가시지 않았고 학교 앞 구불구불한 골목길 주위로 펼쳐진 낯선 동네는 나를 더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침대와 책상, 옷가지와 책 몇 권이 놓여있는 작은 방이 앞으로 내가 서울에서 머물 곳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설렘보다는 낯선 세계로의 한 걸음, 두 걸음이 두렵게만 느껴져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못했었다.


짐 정리를 다 마치고 “잘 지내거래이” 하고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갓 스무 살의 나는 아이처럼 훌쩍였다.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차가운 공기와 함께 갑작스레 밀려왔던 것이다. 하숙집 옆방에 살던 4학년 언니는 나를 다독이며 딴에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난생처음 보는 옆방 언니의 방바닥에 앉아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왜인지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아마도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받았던 보살핌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나는 외가에서 자랐는데, 엄마는 퇴근 후 매일 내 얼굴을 잠깐 보고 돌아갔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엄마 가지 마”를 외치며 울었고, 외할머니는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랬다고 한다. 그러면 또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잘 놀곤 했었다고 커서 전해 들었을 뿐인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시절의 감정을 스무 살 하숙집에서의 첫날, 그날의 내 무의식이 끌어올렸던 것이다.






고향 집을 떠나 독립한 일은 결국 몸이 멀어지는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딸, 친구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의 독립으로 이끄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단단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나 자신이 단단한지 아닌지는 낯선 상황 속에 놓여봐야 가늠해 볼 수 있다. 나도 고향 집을 떠나 가족과 친구 없이 혼자 낯선 곳에 동떨어져 있고서야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알게 되었으며, 그제야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나약함에 대한 나름의 투쟁은 대학생활 내내 지속되었다. 2학년부터는 하숙집을 떠나 자취를 했으므로 혼자 있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심심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놀다 집에 와도 여전히 시간은 많았고 주말이 지루해 수업이 있는 평일을 기다리곤 했다. 가만히 있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생각거리를 물고 왔고, 그렇게 나는 자그마한 네모 공간에서 나에 대한 탐구와 함께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는 듯했다.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발견하면 스크랩해 놓고 나의 다짐이 담긴 댓글을 달아놓았다. 책을 읽으며 내 물음표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명사의 강연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했다. 정신적인 독립을 쉽게 얻을 수는 없었지만, 느릿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나는 터 다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는 동기와 술을 마실 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자취하는 사람들 나라에서 상 줘야 돼!” 그때는 그저 웃기지만 위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진지하게 그 동기의 말대로 힘들었음에 대한 표창장이라도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이 필요한 것일 텐데 다들 각자 살기 바쁜데 인정의 주체가 누가 되겠느냐를 생각해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스스로의 인정, 즉 잘 독립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독립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우리 모두의 독립은 현재진행형이다.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다름을 발견할 때, 결국 내 생각과 감정은 내 것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할 때 등 무수히 많은 순간 속에 독립이 있다.


글쓰기 또한 독립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가장 독립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일이다. 이 완전하고 묘한 작업을 통해 나는 더 독립적으로 세상에 다가서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더 이상 블로그에 일기를 쓰지 않는다. 책도 예전만큼 많이 읽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내면이 안정된 후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그 시절 천천히 닦아놓은 내 삶의 토대는 어느새 넓고 비옥한 땅이 되었다. 그때 찾아본 글귀, 책, 강연 등에서 얻은 지혜는 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시나브로 성장해 왔으므로.


오랜만에 대학 시절 블로그에 썼던 일기와 스크랩한 글들을 찾아보았다. 옛날 일기 속의 다짐과 결심은 지금도 나를 응원하고 있었고, 스크랩한 글 속에 담겨 있는 지혜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꽤나 단단하고 독립적인 지금의 내가 있는 건 그때 그 시절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한 덕분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하지만 그에 앞서 지혜로운 말들을 전해준, 인생을 먼저 겪은 이들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다.


블로그의 글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다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반가운 글귀를 발견했다. 스크랩한 블로그는 사라지고 작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 글귀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강하고도 순한 사람     


사람은 강하고도 또한, 순해야 한다.

강한 것은 무엇이고, 순한 것은 무엇일까?  

   

강하다는 것은 육체적, 지적, 감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것을 말한다.

타인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순하다는 것은 친절, 온화, 겸손, 이타, 예의 등의 덕목을 말한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지 않고 남도 자신처럼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순한 사람은 강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순하기만 하고 강하지 못하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괴로움을 당할 수 있다.     


강한 사람은 순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강하기만 하고 순하지 못하면,

주위 사람을 괴롭힌다. 이건 사나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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