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열받은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
부글부글 치밀어 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상사의 엉뚱한 책망에, 나만 늦게 들은 소식에, 배신까지는 아니지만 친했던 이의 의외의 모습을 볼 때 등.
그때마다 부글부글한 채로 몇 분이 흘러간다. 그전에 닦아놓았다고 착각한 수양은 온데간데없다. 단지 예전보다 열받은 정도가 약해졌고, 더 짧아졌을 뿐이지 화나는 건 똑같다. 어쩌면 그동안 쌓아놓은 수양 때문이 아니라 체력이 달려서 부글부글함이 전보다 일찍 끝나는 것일 수도 있다. 열 내는 것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차분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러고는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너무 했나? 좀 더 딱딱하게 대할 걸 인간적으로 대한 것인가? 내가 아직 운이 안 트였나? 등 가만히 앉아서 예전에도 했던 생각들을 반복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전보다 열받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10번 열받았다면 이제는 3번 정도랄까. 꽤 많이 발전했다. 그전에 혼자 충분히 열받고 생각을 정리하고 대처 방법을 바꾼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의 빡침도 기세를 좀 수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내가 바뀌라는 시그널이야. 아직 내가 승화시키지 못한 무언가가 내 안에 남아있어서 그래.’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단계까지 왔다.
열받음의 강도가 셀 수록 발전하기 직전인 것이라고 속으로 외쳐봤다. 물은 99도가 아니라 100도에서 끓듯이, 나도 좀 더 확실하게 열받아야지 승화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인가 보다라고 말이다. 그래! 더 확실하게 열받자. 거부하지 말고.
‘그런데 열받지 않고 발전하면 안 되는 것일까? 속상함 없이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다가도 비 온 뒤 쑥쑥 자라나는 풀들을 떠올리며, 강한 햇볕에 진하게 익어가는 과일들을 떠올리며, 나도 자연의 일부인데 어쩔 수 있겠냐는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잔열을 식히기 위해 한 바퀴 산책을 나섰다. 속 시끄러운 나와 달리 밖은 조용했다. 나무들은 잔잔하게 새순을 틔우고 꽃들은 앙증맞은 모습을 드러내며 봄바람에 살랑였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앞으로 수십 번의 비와 작열하는 태양이 있겠지만 그들은 올해도 다시 새롭게 시작했다. 그리고 내년에도 마찬가지겠지. 감정적인 인간만이 인생의 추위와 더위를 탓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일까. 그 모든 건 자연의 과정일 뿐인데. 그냥 자연스러운 것일 뿐인데.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연의 고요함은 말없는 위로였다. 이 모든 건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리라. 아니,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현존하다‘라는 게 이런 의미일까.
오늘 새로운 승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충분히 열받았으니 이제 이 감정이 깨달음의 기체로 휘발될 법도 한데 아직 평온하지는 못하다. 재촉하는 것도 인간만 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때를 기다리는 것도 성급한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일 테지.
서두르지 말고 현재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자. 때가 되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음번에는 비슷한 일로 열받지 않기를, 열받더라도 이내 식힐 수 있기를. 눈앞에 보이는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며 소망했다.
숨 한번 크게 내쉬고 다시 힘내자. 물 한 모금 마시고 내 할 일 하자. 모든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조용히 계절 따라 제 할 일 하는 나무와 꽃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