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은 비타민 A가 풍부하다. 혼돈의 청소년기 시절 가정 시간에 배웠던 "비타민 A는 눈에 좋다"라는 지식은 어쩐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폴리에스테르 견대용~ 아~크릴 모대용~ 폴리프로필렌 견대용~ 폴리우레탄 고무대용~" 이 노래도. 우리 가정쌤만 알려주신 노래인가.
당근은 호불호가 있는 재료로 어떤 이는 생당근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익힌 당근을 좋아한다. 나는 후자로 특히 탕이나 찜에 들어가 푹 익은 당근을 굉장히 '호'한다. 하지만 집에서 당근이 들어가는 찜 요리를 잘 하지 않고 또 당근 특유의 향과 단 맛은 요리 본연의 맛을 해치기도 한다고 느껴서 잘 넣지 않는다. 그렇게 사놓고 안 쓴 당근 두 개가 실온에 보관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웃에 사는 언니가 텃밭에서 뽑은 당근 하나를 주었다. 그리하여 손이 잘 안 가는 당근은 총 세 개나 되었고 이렇게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이었나 날이 아직 쌀쌀했을 때 집 근처의 카페에서 당근 라페 샌드위치와 오이 샌드위치를 먹었었다. 둘 다 맛이 죽여줬다. 상큼 깔끔 아삭한 샌드위치의 맛이 계속 기억에 남았었고 언젠가는 집에서도 해먹으리라 생각했었더랬다. 그래서 만들어보았다. 당근이 있는 김에. 그리고 더 이상 수분을 잃기 전에.
다음날에 먹을 생각으로 전 날 저녁에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놨다. 채식 한 끼 대면 모임 날 멤버의 추천으로 산. 채 썰리는 칼로 열심히 밀어서 당근 채를 두둑이 만들어 소금 반 스푼에 10분 정도 재워놓고 홀그레인머스타드와 올리고당, 올리브오일을 적당량 넣어 섞은 뒤 당근과 조물조물 섞으면 끝이다. 나는 이 정도의 조리 시간이 딱이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든든한 마음으로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오전에 할 일을 끝내고 월요일에 반 먹고 담겨둔 치아바타를 슬라이스해서 토스트기에 살짝 돌린 뒤 당근 라페를 넉넉히 올려 먹었다. 맛은 예전에 느꼈던 그대로였다. 아삭하며 상큼하고 구수한 건강의 맛.
채식 한 끼 인증을 올리며 당근은 요리할 때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니 채칼을 추천해 준 멤버께서 말씀하신다.
"당근은 비주얼 담당이에요."
그렇구나! 그래서 샌드위치도 당근빨을 받아 예뻐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