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걸 잃어갈수록

Part 2. 행복해 이젠 널 보낼게

by Fifth Life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도 잃을 것들을 하나씩 잃어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점점 무뎌져 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진지 오래였지만 죽지 못할 경우의 수에 대한 공포는 천천히 그 결단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2023년도에 부지런히도 죽으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 이후로 먼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폐인처럼 살아왔다. 숨만 붙어있는 시체처럼. 2024년 말 부터는 그저 조카를 기다리며 버텨가다 2025년 1월, 그가 태어났고 팔 빠지기 직전까지 안아볼 수 있었다. 2024년과 달리 좋은 일로 시작된 해였기에 괜찮은 한 해이길 조금 기대했다. 기대를 했던게 잘못이었는지, 그렇게 맞이한 2025년은 특히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나쁜 일들이 줄줄이 겹쳐 일어난 해였다. 이미 물에 빠져 있는 내 발에 누군가 바위를 하나씩 묶어 가라앉혀 질식시키려는 것 처럼.


여러 갈등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날 네번이나 건져냈던 베프와의 관계도 결국 끝이 났다.
사소한 일들로 참 많이 다투고 화해하고, 어지간히 큰 싸움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보고싶어하고...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위로의 존재라고, 자매같은 관계라 자부했던 사이였다. 그래서 더더욱 깔끔한 끝맺음도 없이 내가 일방적으로 손절당했다는 사실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마지막이 아팠다. 친구에겐 내가 떠나려 했던 날들이, 어느 위로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나의 상태가, 아직도 죽고싶어 하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고 그럼에도 치료를 거부하는 내가 그 자체로 너무 상처고 더 지켜보기 힘이든다 했다. 언제 죽어버릴지 모르는 나의 친구로 살아가는게 버겁고 더이상 자신의 위로가 닿지 않는 내 위치에 무력해져 손을 놓았다. 나도 더이상 잡지 않았다. 나도 이젠 너의 어떤 말들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일렁였다.

'이렇게 놓을거면 애초에 잡지 말지... 나 때문에 울지 말지... 살아달라고 빌지를 말지...'

결국, 해서는 안되는 말들이 오갔다.

병원 갔으면 좋겠어... 아무 도움도 안 받으면 안 나아져...

너 덕분에 네번씩이나 병원에 끌려가서 내 앞으로 쌓인 빚이 얼마인 줄 알아? 그거 네가 갚아줄거 아니면 아무것도 강요하지마. 난 할 만큼 했어. 나한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야. 필요한 약도 어차피 처방 못 받는 마당에 일주일치 수당 쏟아붙고 내 삶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하소연만 하다오면 현실에 달라지는 건 뭔데? 전문가란 사람들도 나한테 해줄 건 이제 없어.

최선을 다한게 맞아? 도움이 되는 전문가를 찾아가야지! 아직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았잖아. 어딘가엔 정말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너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잖아.

결국 그 소리가 하고 싶었지...? 내가 죽지못해 죽은 듯 살 수 밖에 없는 게 다 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고 내 탓이라고. 너가 나로 살아봤냐? 너야 힘든 일 생기면 부모님 한테 달려가면 되고 니 남친한테 달려가면 되고 파산하거나 통장 바닥나도 남친 집에 얹혀살다 결혼하면 평생 길바닥에 나앉을 걱정도 없겠지만. 난 너처럼 필요한 걸 필요할 때마다 누가 떠먹여주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어. 살기 싫다는 사람 살려놔서 네가 얻은 건 뭐야? 나는 단 한순간도 너한테 와달라고 한 적이 없어. 그리고 그게 고마웠던 적 없어..

너한테 고맙단 소리 듣자고 살려놓은거 아니야...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선이 아니었던 건 물론이고 밤엔 술로 잠에 드는 습관도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심정지 후유증으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찼고 빈혈이 잦았지만 병원에 수고스럽게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악화되다 죽어도 상관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저 한마디에 욱해서 결국 나도 그녀의 컴플렉스를 건드렸고 그게 되려 나의 결핍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꼴이 됐다.


말 다툼이 생길 때 마다 무난하게 사과하고 넘어가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내며 시간을 덮어갈수록 관계에는 금이가고 있었고 친구는 어느날 갑자기 연락처에서 날 차단하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사라졌다. 차단 당했다는 건 내가 전화를 시도할 땐 연결이 되지도 않는데 다른 친구들과는 연락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들었을 때 알았다.

나의 죽음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 친구로 남길 포기하는 그녀 앞에서 그 순간에도 난 오래 살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진심으로 늘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프로포즈를 받는 날 그 누구보다도 축하해주겠다고. 너의 결혼식에 bride maid로 함께하겠다고. 그러나 난 이미 네번씩이나 신뢰를 깼다. 그렇기에 맨정신으로 또 그런 빈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삶을 놓는데에 너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 너 역시 이 관계를 놓는데에 나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는 붙잡을 수 없었다. 이젠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하나 줄었단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베프와의 절교 후 기운이 다 빠져있던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니 편이라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너무 시간 낭비하지 말자며 내가 사는 곳 까지 와서 같이 놀아주겠다던 10년지기 친구 Y는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을 남겨 둔 채 마치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렇게 난 네번째로 내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내야 했다. 내가 먼저 죽었다면 그들이 죽는 것도 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사망자가 되길 네번씩이나 실패한 나는 그렇게 네번 사별자의 자리에 놓여야 했다.

그러고 이틀 후, 나는 5년간 근무하던 직장에서 퇴근 직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1주일에 6일을 내게 새벽 4시 30분에 가게를 오픈하는 스케줄을 줘놓고 딱 하루 알람을 못 들어 늦잠자는 바람에 가게가 10분 늦게 열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날 잘라냈다.

친구도, 직장도, 그리고 내 삶도 난 어느하나 지켜낸게 없다.

그땐 정말 세상이 내게 마지막으로 선고하는 것 같았다. 넌 그냥 살지를 말라고.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간 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한 문장이었다.

“이제 내가 죽으면 되는 건가?”


친구가 떠나고 집 앞 기차역에 가서 자주 앉아있었다. 정말 뛰어드려는 생각이었다기 보다는 미끄러져오듯 다가오는 기차가 나와 충돌히는 걸 상상하면서 레일 안으로 걸어들어가는게 어떤 심정이었을까 싶어서였다. 살고 싶지 않지만 살 수밖에 없는, 끝내 버텨야만 하는 어떤 무거운 절망 속에서 몸을 던질까 말까 고민하다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마지막으로 디딘 한발짝의 용기에 너의 생이 끝난 게 아니었을까.


요란한 쇳소리와 진동으로 머릿속이 요동치며 맞은편에서 기차가 내 얼굴과 점점 가까워지는 걸 넉 놓고 바라봤다. 솔직히 그 속도가 하나도 빠르지 않은 것 같았다. 도착 역이 코앞이니 속도를 줄인 것이겠지만... 저 속도로 부딪히면 못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이상의 병원행은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도 기차는 아무일 없다는 듯 플랫폼을 지나갔다.

그리고 나도.

기차는 지나갔고 그 자리엔 허무만이 남아있었다.

살고싶어서 지나간 건 아니었다. 그저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