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도 짐도 내려놓지 못한 채로

숨만 쉬는 시체가 되어

by Fifth Life

지금까지 난 죽음의 문턱을 찍고 돌아오는 걸 네번 반복했다. 내가 돌아오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 문의 손잡이 돌려봤으나 열리지 않았을 뿐...

도데체 왜 그렇게 까지 죽어야만 했느냐고 물어보는 말에 그동안 딱히 명확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난 23번째 생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는, 미래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이가 차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성취를 하나씩 쌓아갈 자신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1년에만 네번의 시도와 입원을 했었지만 그 과정에서 딱히 배우거나 얻은 건 없었다. 굳이 하나 배운 걸 꼽자면 살고싶은 척 연기하는 법 뿐인 것 같다. 퇴원 여부는 환자도 그의 가족도 아닌 오롯이 주치의의 손 안에 있어, 최대한 빨리 나가려면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실제 감정은 숨기며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답만 골라 제공해주면 되었다.


2023년 4월

아침 7시에 스텝의 일부가 방 곳곳을 돌며 환자 모두를 기상시킨다. 혈압을 재는 시간이다. 기계 사용전에 전원을 키고 상태를 점검하듯 환자들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혈압과 맥박이 정상 범위에 있는지 명단에 체크마크를 줄줄이 그어내려간다. 병동의 아침 루틴이다. 나처럼 혈압이 일반적으로 낮을 경우 물 마시고 누워있다 다시 와서 재라고 한다. 그땐 그게 동물원의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깨워지고, 같은 자세로 팔을 내밀고, 같은 기준에 맞춰 숫자로 환원되는 존재. 환자이기 보단 측정 대상. 관람객은 없지만 24시간 관찰되는...

8시 쯤엔 아침 식사 시간이다. 메뉴는 펜케잌이나 씨리얼 정도다. 흔히 보이는 미국식 아침 식사다. 입맛이 전혀 없어도 먹지 않으면 내가 아직도 상태가 안 좋다는 증거가 될까봐 억지로라도 먹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자유시간이라 불리는, 하루중 가장 긴, 그저 떼우는 시간이었다. 색칠공부를 하거나, 퍼즐을 풀거나, 책 읽거나, TV로 스포츠 게임을 보거나, 방에가서 그냥 잠을 자거나. 너무 많이 자면 그것도 우울의 증거가 될까 낮잠도 자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사회복지사들이 교육이랍시고 스트레스 조절하는 법 혹은 나를 사랑하는 법 등등의 뜬구름 잡는 수업을 하러 왔지만 그게 효과가 있으면 내가 지금 여기 와있겠나 싶어 가지 않았다.

낮이 되면 레지던트 의사들과 전문의 한명이 회진을 돌며 복사해서 붙여넣기 식의 질문들을 환자 한명한명에게 다가가 묻는다.

How would you rate your depression on a scale from 1 to 10, 10 being the most severe?
우울감을 1부터 10까지의 척도로 평가한다면, 10이 가장 심한 상태일 때 넌 몇 점이야?
What about anxiety?
불안도는?
Any side effects to medication?
현재 복용 중인 약 부작용은 없어?
Do you still feel suicidal?
아직도 자살충동이 들어?

우울감과 불안도를 묻는 질문엔 1이라고 답하면 너무 거짓말인게 티가 날 테니 적당히 5라 답하면 됐고 약은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됐다. 효과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공황장애가 심한 내게 항우울제가 효과 있을리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주치의는 내가 먹고 죽으려 했던 공황장애 치료제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퇴원만을 목표로 최대한 안 불안한 척 연기해야했고 10년 넘게 소울메이트마냥 붙어있던 자살생각이 병원에 왔다고 사라지는 건 더더욱 아니었지만 퇴원을 위해서 당연히 그 질문엔 No 라고 답해야만 했다.


2023년 5월

그렇게 2주만에 퇴원을 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입원기간동안 유예되었던 빚을 청산해야했다.

퇴원을 하고보니 졸업이 2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삶에서 도망쳤던 2주동안 제출마감일이 지난 실험 보고서와 과제가 쌓여있었고 공부해야 할 기말고사 범위는 더 두꺼워지고 있었다. 2주만에 열어본 이메일함에는 교수님들로 부터 온 메일들이 줄지어 있었다.

과제 0%
현재 성적 낙제 위험
Warning

치료가 목적인 병원에서 나온 후 공황증세는 아이러니하게 몇배 더 심해졌다.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다 생존한 대가가 이렇게 청구되는 것 같아 찢어지게 억울했다. 졸업 전에 죽는게 계획이었으나 그게 틀어졌으니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했다. 죽는 것도 실패한 마당에 졸업마저 실패하기는 싫었다.

교수님들에게 한명씩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2주간 병원에 입원했어야 했다는 사정 설명과 함께 마치지 못한 과제들을 끝낼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드렸다. 당시에 듣던 수업이 5개였는데 교수님들 전부 하나같이 딱 5일 더 주겠다고 했다. 보통 한 수업당 끝내는데 1주일씩 주어지는 과제를 난 하루에 하나씩 끝내야 했다. 그 위에 기말고사까지 얹어 마무리 해야했다.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침대 없이 생활하던 독기로 어찌저찌 벼락치기를 이어갔다. 낙제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아 조마조마했던 전공과목에서 아슬아슬하게 C를 받아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성취감을 느끼기엔 하찮은 성적이었지만 한학기를 더 안 다녀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졸업 후 삶의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곳에서 일했고 생계 유지를 위해 투좝을 뛰었다. 잠깐 순탄해지는 듯 흘러갈까 싶었던 일상에 다시금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불안요소가 제거되었음에도 약없이 공황장애를 견디는 건 몸이 부서져 가는 일이었다. 몇번이고 주치의에게 약을 부탁했지만 이미 자살시도 히스토리가 생겨버린 나에겐 처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혀 효과 없는 약들만 이것저것 실험실의 쥐처럼 바꿔가며 처방됐고 나중엔 호흡법을 훈련하라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안 겪어본 사람에게 가장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자면, 온몸에 벨이 울리는 감각에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오는 증상이다. 더해서 가슴에 폭탄을 하나 얹고 사는 기분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매번 노심초사해야 하는...

그런 상태에서 들이마시는 공기의 길이를 통제하라는 조언은 절망스러웠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건 숨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약이 없으니 매일 밤 술로 나를 재웠고 잠에서 깨어 출근을 할 때 마다 이런 의문이 반복됐다.

죽으면 어차피 돈도, 약도, 산소도, 그 무엇도 다 필요없는데 왜 굳이 살아서 이런 일상을 매일 반복해야하나...

근무 중에 발작이 오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만들어야 했으며 흐려져가는 시야에도 웃으며 손님들을 맞아야 했다. 정신과의 간판을 단 연극영화과 병동에서의 연기 훈련 덕에 웃는 얼굴은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졌다. 살기위해 몰아쉬는 숨에 왜 자꾸 그렇게 한숨을 쉬냐는 매니저의 지적이 늘 따라왔다. 가빠지는 숨조차 눈치보며 쉬어야 했다.

한때 좋아했던 음식들도 음료들도 더이상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살아있는게 억울했다.


2023년 6월

퇴원한지 두달 째, 여느 때와 같이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밤이었다.

예전에 무거운 걸 들다 허리를 조금 다쳐 처방 받았던 진통제가 남았다는 게 떠올랐다.

고민은 길게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약병으로 손을 뻗었고 다음날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뜸과 동시에 각색의 기계음들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그렇다.

또, 실패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건 숨의 길이가 아니라 내게 남은 하루의 길이었다.

그러나 삶은 나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