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인사이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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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너무 미안했어.
엄마의 장례를 치른 친구의 첫마디였다. 그래서인지 꿈에 자주 나타나신다고 했다. 장례식에 오신 엄마의 모든 지인들이 엄마는 좋은 분이셨다며 덕담을 하셨단다. 가게를 운영하실 때, 직원으로 계셨던 분들도 오셔서 엄마 같은 사장님은 없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고. 엄마를 싫어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며느리. 엄마는 가끔 며느리가 답답하다며 하소연을 하셨는데, 친구는 그때마다 올케 편을 들었다고 한다.
엄마, 부부가 잘 살고 있고 아이 잘 키우면 됐지. 그 이상 뭘 더 바라.
며느리 입장이다 보니 엄마의 하소연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던 친구가 장례식에서 올케를 지켜보니 그럴만했다는 것이다. 명절에도 엄마가 음식 다 해 놓으면 전날 올라와서 식사 후에 설거지만 하고 바로 친정에 보냈던 시어머님은 흔하지 않다. 당일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보내도 좋은 시어머님인데 전날 시댁에 오면 저녁 먹고 바로 친정 보내는 시어머님이 얼마나 고마운가. 며느리 손에 물 안 묻히게 하는 엄마가 속상해하시면, 그 정도 하소연은 들어드렸어야 했는데 늘 올케 편을 든 스스로가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싸울 줄 몰라서, 이야기를 꺼내라면 눈물부터 나오는 바람에 회피하고 마는 나도 함께 사는 세월 동안 끈덕지게 티격태격 옥신각신 하는 첫째를 떠올렸다. 나는 첫째를 '지구에서 유일하게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세월이 흐르며 많이 너그러워지긴 했지만 군대 다녀와 대학원 준비를 하는 장성한 아들이 가장 거슬리는 존재라는 사실이 가끔은 사무칠 때도 있다.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잘 받아주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족함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은 엄마임을 알면서도 아들 흉을 보는 일은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잘 알지만, 가장 가까운 절친에게는 속풀이 삼아 할 수 있다.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풀려서 오히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고, 한 동안은 평화롭게 지낸다. 축적된 시간의 교훈을 통해 지금은 유연하게 조절하며 멀리서 지켜보고 있지만 워낙 첫째 이야기를 자주 했던 터라 친구는 '유일한 적'을 생각하다가 우리 집 큰 애가 떠올랐나 보다. 아무리 좋아도 한 사람의 적은 있을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친구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풀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거라며 시작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고 나면 미안한 마음에라도 올케에 대한 감정의 찌꺼기를 비울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은 뭐라 해도 가족끼리 더 많이 감싸주고 아껴주어야 하는데 다 큰 아들을 힘들어하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들보다 엄마인 내가 창피하면서도 속은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엄마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누구든 '한 사람의 유일한 적'은 있을 수 있다니 말이다.
새벽에 들어와서 조용히 문을 닫은 첫째와 짧지만 깊은 대화를 시도했다. 어릴 때 이미 질려서 엄마의 모든 이야기가 잔소리가 될까 봐 가능하면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내 관점에서만 조심일 뿐, 워낙 많이 들어서 아이에게는 똑같은 잔소리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아이가 대응 삼아 꺼낸 이야기 속에서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에게 둔한 엄마가 주었던 상처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래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을 알아주지 못한 무심함이 전해졌다.
여린 구석이 있고 착하기는 해서 엄마의 이야기를 수긍하며 조금이나마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시야가 좁고 예민하며 민감한 아이지만 유연하고 긍정적이기도 해서 엄마를 존중해 주려는 노력이 보여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되기도 했다. 아직 공유지분이 남은 일상에서 점점 줄어드는 엄마의 역할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건만, 서운한 마음에 한 마디씩 뱉었던 잔소리를 이제는 싹 다 거두어야겠다는 자각이 본능처럼 올라왔다. 늘 같은 이야기였지만 엄마의 각도가 달라져서 그랬는지 아이가 안쓰러웠고, 앞으로는 더 많이 보듬어 주고 싶었다. 둘 다 더 노력하기로 했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기로 했다.
평생 유지할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유일하게 미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힘들 때 마음의 부침은 더 클 것이다. 일상의 공유 지분이 없는 타인에 대한 미움이나 악 감정은 금방 잊히지만,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모난 부분이 더 뾰족해질 수도 있겠다. 타인을 미워할 만큼 속이 단단하지 못해서 어쩌면 제일 가까운 가족이나마 불평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못난 마음이 더 뾰죡해지고 못생겨질 때, 한 사람쯤은 거슬릴 수도 있다는 인정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부족한 스스로를 인정할 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가장 사랑하고 이해해줘야 할 존재를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해하는 상태를 수용하면, 아픈 몸을 자각하고 약을 찾듯이 스스로 치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프고 거슬려서 힘든데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법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마음의 부족함, 밴댕이 같은 내 속을 먼저 수용하면 타인에 대한 마음씀도 넓어짐을 친구와 대화하며 한 번 더 깨달았다.
그래서 절친과의 만남은 소중하다. 일상의 한 끼 식사를 하면서 함께 느끼고 배우는 지점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통찰이 되기도 한다. 나의 유일한 적도 그러할 것이다. 불편해도 부드럽게 대화하며 마음을 알아주고 응원의 피드백을 해주는 과정은 필요해 보인다. 나에게 유일한 적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건강의 증거가 아닐까. 부족한 나를 외면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유일한 적 덕분에 에너지를 올리며 건강함을 유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싸우는 단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