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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Feb 19. 2023

시댁 곗돈은 머리가 아프다.

곗돈을 안 하고 싶다.

곗돈.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돈을 벌거나, 결혼하고 나서 형제, 자매가 있는 집 대부분은 '곗돈'을 시작한다.

내 생각으로는 나이 드신 부모님의 기념일이나, 가족모임, 여행 등등 큰돈이 드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각자의 가정에 좀 덜 부담스럽게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 그것을 곗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하고 원래 넣었던 친정 곗돈과 시댁곗돈을 각각 10만 원씩 매달 꼬박꼬박 넣고 있다.





부모님 환갑과, 아빠 칠순까지, 나와 여동생은 친정 곗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서 기념일 때마다 잘 활용하고 있다.(큰 딸인 내가 관리하고 있다.)

반면, 시댁 곗돈은 누나 둘과 남편, 이렇게 셋이 모으는데도 통장 잔고가 매번 부족하다. 거기다 "시댁곗돈"이라고 세 남매만 상의해서 항상 진행했기에, 나도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물어보지 않았고, 알아서 하라고 항상 내버려 뒀다.

 3명이 매달 10만 원씩 30만 원을 1년 모아도 360만 원인데, 왜 잔고가 항상 부족하다고 할까.

이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역시 "시댁곗돈"이니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3년 전, 왜 부족한지 알게 되고, 각 가정에서 일부 돈을 각출하자는 말에 나는 남편을 물어뜯었다.(컹컹!)


돈이 부족했던 이유는 시어머니가 요구하는 걸 모두 곗돈으로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갖고 싶었던 가락지, 좁은 아파트 거실에 안마의자, 시어머니 동남아 놀러 갈 때 여행 경비, 에어컨 교체 등등으로 말이다. 가끔 시댁에 갈 때마다 새 물건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모두 곗돈으로 산거였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치아가 안 좋아서 치료를 급하게 해야 하는데 그 비용으로 400만 원가량의 돈을 달라고 하셨다. 곗돈을 저렇게 써대니, 통장에 돈이 남아있겠는가. 곗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고, 300만 원을 마련해야 했던 상황.

정말 황당하게도 곗돈을 관리하는 큰 시누가 의견을 냈는데 그 의견을 남편에게 전해 듣고 나는 남편을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세 명이니 각자 100만 원씩 내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앞으로 시댁곗돈을 줄 수 없겠어. 이런 급한 상황에 쓰라고 곗돈을 낸 건데 이건 아니야."

"미안해. 내가 잘 말해볼게."

"그래도 각출해야 한다면 앞으로 시댁곗돈에서 우리는 빼달라고 내가 말할게"

"내가 정리할게. 미안"


한바탕 물어뜯긴 남편은 정신을 차렸는지, 며칠을 시누들과 상의한 끝에 각출은 없는 것으로 했다. 대신 작은 시누가 먼저 계산하고, 앞으로 곗돈을 모아 작은 시누에게 주고, 이후 곗돈은 모으기로!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면, 나의 시댁이 아니겠지.


작년 겨울, (몇 달 전 일이다.) 시아버지 칠순과 관련해서 일이 터졌다.

칠순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코로나 상황이기도 했고, 100세 시대다 보니, 칠순잔치를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말해주기를, 큰 시누 가족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휴가를 내서 2주 정도 국내여행을 가는 것으로 칠순을 챙길 계획이라고 했다.

딸이어서 가능한, 너무 멋진 계획이어서 남편에게 정말 멋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내가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2주면 너무 긴데, 6명 숙박비랑, 관광지랑, 식사비랑 만만치 않을 텐데 큰 시누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냐?"

"... 곗돈으로 간다는데?"

"!!!!!!!!!! 컹컹!!!!!!!!"

 

듣지도 보지도 못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잠시 생각정리가 필요했다.

아마도 큰 시누는 대단히 단순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 2주 정도의,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가는 긴 여행이니, 곗돈을 쓰면 되겠다. 그래도 모자란 돈은, 내가 내야지. 뭐, 아버지를 위해 우리 가족이 이렇게 기념해 주는 거니까.....??????]

아마도 저렇게 단순하게 생각한 거 아닐까.

아니,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해도,

그냥 아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야!!!!!!





다시 남편을 물어뜯고, 교육을 진행했다.(피곤하다 피곤해.)


"다 같이 모은 곗돈은 다 같이 사용하거나, 부모님만을 위해 사용하거나 그 외에는 허용할 수 없어."

"곗돈을 다 사용하고 나서 돈이 필요할  상황, 그래서 각출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

"큰 시누는 곗돈을 등에 업고 효도라는 명목으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 같아."

" 그 여행, 내가 갈게. 곗돈 나한테 줘."

  

남편은 그렇게 사용하는 곗돈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누나에게 조금 당황했고, 큰 싸움 날까 봐 그냥 넘어갈까 했었단다.


 "이번 한 번 넘어가면, 다음 시어머니 칠순 때도 그럴 거고, 곗돈은 모이지 않을 거야. 매번 큰돈을 내야 할 거라고. 나는 이젠 곗돈을 못 내겠다. 그 돈을 따로 모으겠다고 말할게. 각출 필요할 때 말하시라고 해."


결국, 남편은 큰 시누를 설득?? 한 끝에, 곗돈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2주간의 국내 여행도 사라졌다. (4일 여행을 계획했지만, 개인사정으로 취소되었다.)

결국엔 곗돈이 아니면 갈 여행도 아니었던 거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용돈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다 같이 모은 곗돈을 내 돈처럼 생각하는 큰 시누.

그래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20년 가까이하셔서 시어머니와는 달리 경제개념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댁은 항상 예외인 듯하다.


이렇게 곗돈과 관련된 히스토리는 결국엔 잠잠해졌지만, 다시 또 언제 내 속을 뒤집을지 모르겠다.

이젠 그냥, "두근두근" 설렌다.

다음엔 또 어떤 일로 날 헛헛하게 만들지.


다 같이 모은 곗돈은 내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일방적인 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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