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온 원래 목적, 피아니스트 소코로브의 공연은 어제 달성하고 우리에게 이탈리아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피렌체에 와 있으니 동네 언니가 추천한 피렌체의 Uffizi 우피치 갤러리를 아침에 구경하고 오후에는 피사로 넘어가서 피사의 사탑을 구경하기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는데 Viator 앱을 통해 예약해 둔 가이드 투어가 오전 10이어서 약 30분 정도 시간이 있어서 아들과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갤러리 주변을 걸어 다녔는데 패션 이탈리아를 뽐내는 여러 옷가게들을 지나처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조토의 종탑이 보였다. 계획에도 없던 두오모 성당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지만 시간이 없던 터라 사진만 몇 장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종종걸음으로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앞에는 동상들이 곳곳에 서 있었고 우리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만나기로 한 동상 앞에 도착했다. 미리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 둬서 우리는 길게 줄 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가이드 아저씨의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 안으로 향헀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는 꽃나무로 가득한 정원의 여인들과, 여신 헤르메스, 하늘을 날고 있는 큐피드가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미술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너스의 탄생이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가이드 아저씨는 필리포 리피의 <성모와 아기 예수와 두 천사> 작품 설명에 특히 정성을 다했는데 이 작품의 성모 모델은 바로 필리포 리피의 연인이라고 했다. 수녀원에서 만난 수녀와 사랑에 빠졌는데 바로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가 그 주인공인데 그림의 모델인 그녀와 사랑의 도피 행각도 벌였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 건너편엔 아르노 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베키오 다리가 보였는데 다리 위에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보석상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거장 화가들의 멋진 그림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관광 기념품을 파는 수많은 천막 가게들을 지나자 우리들의 눈앞에 사진으로만 보던 그 피사의 사탑이 떡하니 서 있었다. 이게 현실인가? 정말 우리가 말로만 듣건 그 피사의 사탑 앞에 서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최대한 쓰러져가는 피사의 사탑을 받치는 최고의 사진을 연출하고자 하는 관광객들 속에 우리도 끼어들었다. 줄을 한참 서야 최고의 사진 찍는스폿을 점령할 수 있었는데 피사의 사탑을 받치는 듯한 리얼한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아서 조금씩 앞으로 그리고 옆으로 움직였다가 길가에 세워진 기둥 위에 올라가서 아슬아슬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찍고 또 찍고 자리를 옮겨서도 또 찍는데 아들이 “엄마, 이제 그만!” 하고 외쳤다.
충분히 사진을 찍고 우리는 그제야 멋진 돔형 지붕이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과 피사 대성당의 모습에 압도되었다가 끝없이 파랗게 펼쳐진 예배당 앞 정원의 잔디밭에 누워서 햇살 따스한 이탈리아 오후의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푸른 잔디밭과 어우러져 평온한 오후를 그리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맛난 이탈리아 피자를 먹으려고 기차역 부근의 식당을 검색해 보니 피자집은 약 30분 후에 오픈을 해서 우리는 검색한 근처의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굴다리를 지나 어렵게 도착한 그곳엔 검색한 그 식당은 온데간데없었고 우리는 낙심을 하고 다시 주변을 걸어 다녔지만 식당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기차역 옆에 30분 후에 오픈하기로 한 그 식당을 가기로 하고 사람 한 명 정도만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 옆 도보를 걷고 또 걸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예쁜 풍경이 반기지는 않았고 오히려 벽마다 락카 페이트로 도배된 낙서들이 무섭게 우리를 쳐다보는 듯해서 왠지 마음이 움츠러 들었다.
한참을 걸어 다시 도착한 기차역 옆 피자집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식당이 아니었고 우리는 낙담을 하고 다시 식당 찾기 삼만리가 시작되었다. 되돌아왔던 그 불친절했던 길을 지나 식당을 찾느라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다가 결국 발견한 식당처럼 생긴 와인바에 들어가기로 했다.
길도 어둑어둑해졌고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이번 여행에 다가온 첫 번째 위기를 우리는 헤쳐나가야만 했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니 키친은 한 시간 있다 오픈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간단한 애피타이저를 시켰는데 나온 음식은 우리의 눈을 당황케 했다. 칠리요리를 시켰는데 바나나 크기만 한 빨간 말린 고추가 나온 것이다. 이걸 먹으라고? 하는 아들의 황당한 표정에 나도 헛웃음이 났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우린 나름 맛있게 그 빨간 말린 고추를 먹었다. 플랫브래드와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우리가 정처 없이 헤맸던 피렌체의 어느 골목길을 빠져나와 호텔을 향했다. 내일은 내 마음속 이번 여행 하이라이트인 스위스로 가는 날이라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