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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스 Jasmine Aug 18. 2024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속으로

황미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로 배운 베르사유에 내가 서 있다니!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던 스위스 인터라켄에게 굿바이 인사를 띄우고 아들과 나는 호텔 건너편에 있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다음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프랑스, 이번 봄방학 음악 여행의 종착역이다. 내 고등학교 때 친구 큰 혜영이가 살고 있는 파리 근교 Chaville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 일단 기차로 파리까지 가기로 했다.


혜영이는 고등학교 1학년때 내 짝꿍 뒤에 앉아 있었는데 우리 반에는 이혜영이 세명이었다. 그것도 우리 분단에 젤 첫 줄, 셋째 줄, 그리고 넷째 줄에.  첫날, 선생님께서 이혜영하고 출석을 불렀는데 동시에 2명이 손을 들었는데 선생님이 너네 둘 다 아닌데… 하셨다가 이혜영하고 또 부르셨는데 그제야 내가 듣고 네! 했었던 고등학교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난 중간 혜영이였는데 큰 혜영이와 늘 붙어 다녀서 결국 작은 혜영이로 3년간 불렸고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 대학교에서도 혜영이가 3명이었고 난 제일 작았으므로 쭈욱 작은 혜영이었다. 난 장녀라서 나이에 비해 많이 순진했는데 큰 혜영이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제법 조숙했었다. 큰 혜영이를 통해 그룹 동물원을 알았고, 김광석 콘서트에도 따라가고 학교 앞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전경들을 피해 도망가는 행렬에도 얼떨결에 끼어서 “고등학생은 나서지 않아도”하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이름이 한자로도 같았었다. 나는 22번, 큰 혜영이는 28번이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성적표를 보시더니 다른 건 다 잘했는데 윤리가 점수가 이게 뭐냐 하시는 거다. 아버지의 눈길을 따라갔더니 아버지는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혜영이의 성적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었고 나는 눈을 딱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우린 각자 미국 달라스 근처, 프랑스 파리 근처에서 아들 하나 딸하나를 키우고 있다.

큰 혜영이는 대구 팔공산에서 등산을 하다 만난 프랑스 남자, Stephan과 결혼해서 일본에서 몇 년을 살다가 한국에서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정착한 듯하다.


재작년, 아들이  Paris Grand Prize Virtuoso Competition세계 피아노 대회에서 수상을 해서 프랑스 파리에서 수상식 겸 공연을 했을 때 큰 혜영이를 공연장에서 만났었고 그 후로 약 1년이 좀 더 넘어서 또 큰 혜영이를 만나게 돼서 예전에 내가 파리에 가면 큰 혜영인 한국에 가 있고 내가 한국에 가면 혜영인 파리에 와 있던 저주가 이제는 풀린 듯했다.


기차로 6시간이면 프랑스 파리 도착이다. 큰 혜영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 있는데 어쩌면 마중을 못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파리역에 도착해서 인파를 헤치고 지하철 역을 여기저기 헤매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아들과 나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친구집은 역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으니 택시값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싼 약 40유로라서 놀랐다.


드디어 큰 혜영이 집 도착!. 재작년에 파리에 왔을 땐 집이 공사 중이라서 방문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엔 금, 토 이틀밤을 신세 지게 됐다. 하얀색 2층집 벨을 누르니 큰 혜영이가 반갑게 얼굴을 내밀었다. 재작년 겨울에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큰 혜영이는 예전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였다.  마른 몸에 짧은 커트머리, 보이쉬한 매력이 있는…


대학교 때 큰 혜영이와 있으면 나는 예전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고등학교 큰 혜영이와 함께 있으면 난 별 걸 다 기억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큰 혜영이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고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날 신기하게 쳐다봤다. 심지어 난 고등학교 1학년때 큰 혜영이와의 첫 만남이 생생한테 그녀는 내가 중학교 때 친구인가 하고 헷갈려하는 걸 보고 뜨악해지기도 했다.


큰 혜영이의 집 벽에 걸린 동양화 그림들을 찬찬히 바라다보며 내 고향을 그리며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사실 그 그림들은 남편  Stephan의 그림들이었고 그림 중에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어머니의 그림이라고 해서 신기했고 또  Stephan  이 북한에서 가져온 그림도 있다고 했다. 아들과 내가 묵을 2층 방에 그런 북한에서 가져온 그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Stephan이 북한에 가서 가지고 왔다는 건지 한국에서 우연히 얻은 것인지는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일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간다는 아들보다 몇 살 어린 중학생 루씨는 피아노를 곧잘 쳐서 아들과 금세 친해졌다. 둘이는 피아노에 같이 앉아서 피아노 배틀을 하듯 서로 치고 듣고 하고 그 옆에 오늘 병원에 갔다 온 고양이가 함께 피아노를 경청하고 있었다. 저녁은 Stephan이 구워준 맛난 스테이크를 먹고 큰 혜영이가 담았다는 깍두기도 맛나게 먹었다. 내일은 친구 집에서 가까운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프랑스에 와서도 느낀 건데 확실히 유럽인들의 아침식사는 미국 식사보다 건강식이었다. 샐러드와 바게트 빵으로 아침을 먹고 동네에 선 과일, 야채장을 구경했다. 매일 아침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이곳에서 살 수 있는데 오후가 되면 상인들은 다 퇴근을 한다고 하는데 정말 북적되던 장터가 오후에 돌아와 보니 온데간데없이 빈터로 남아 있었다.

우리 셋은 버스를 타고 파리에서 약 2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자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베르사유 궁전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나의 여행 최애 어플인  Viator에서 미리 예약한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가이드 여행을 예약해 둔 터라 인솔자와 일행들을 루이 14세 기마상 앞에서 집결해서 만났다. 족히 100M는 넘게 보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줄을 쳐다보며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을 지나쳐 화려한 금색 문이 나타났다. 궁전보다 더 넓다는 궁전 뒤편에 있는 대정원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여신과 천사의 청동 동상이 호수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 대정원에서 파리 올림픽 종목 중 펜싱, 승마, 수영, 사격이 펼쳐진다고 했었는데 정말 지난주에 막을 내린 올림픽에서 베르사유 궁전에서 메달을 따 낸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며

아 내가 저곳에 있었지!

하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가이드와 함께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금박으로 둘러싸인 천상의 모습 천상화가 천장을 메운 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빨간 벨벳 커튼을 양 옆으로 둔 왕실의 침대 역시 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빨간 벽지 위로  화려한 금박 프레임의 거대한 초상화들이 침대 옆에 걸려 있었고, 벽에는 또 다른 초상화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곳, 거울의 방에는 정원을 향한 17개의 창문이 보였고, 반대편 벽에 17개의 거울이 배열되어 있었다. 거울의 방은 궁전 본관의 2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으로 왕족의 결혼식이나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곳이라고 했다.

어릴 적 황미나 만화가의 작품 <베르사유의 장미>를 통해 익숙했던 그 이름, 베르사유의 궁전을 직접 그것도 아들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와 함께 거닐었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바로크 시대의 화려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베르사유 궁전은 끝없는 금색의 휘황찬란함으로 우리들의 두 눈을 어지럽힌 채 왠지 괴리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 화려함을 뒤로한 채 우리는 금색에 지친 우리 두 눈에게 휴식을 줄 평범하고 따뜻한 온기가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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