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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01. 2024

영원을 품은 짧은 시간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_안녕, 헤이즐

이李씨(이하 이): 소설 'The Fault in Our Stars'는 우리말 번역서 제목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우리말 영화제목은 '안녕, 헤이즐'.

 영미권에서는 소설과 영화가 같은 제목이야.


'영원을 품은 짧은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물리적 시간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다를 수 있기에.


점선면(이하 점): 이 씨의 말을 들으니, 포스터의 남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뭔가... 길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야.


: 음. 이 별 planet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 별 planet과 이별할 운명 아닌가. 누군가는 그 시점이 이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늦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점 씨의 말대로 두 주인공은 한 명이 세상을 떠나감으로써 이별을 하지.


: 너무 앳된 청춘인데, 어쩌다가?


: 누구를 탓해야 할까? 십 대에 암이 발병하는 건. 아니, 십 대가 되기도 전, 소아암으로 고통받아야 한다면.

누구의 잘못인 거야? 신을 원망해야 할까? 운명을 원망해야 할까? 가족을? 아니면 자신을?

그래, 작가는 제목을 저렇게 달았어. 잘못은 우리 별에 있다고.


16세 여주인공 헤이즐 Hazel은 어렸을 때 암이 발병했고, 암세포가 폐에 침투해서 산소호흡기가 없이는 호흡이 어려워. 17세 남자주인공 어거스투스 Augustus(거스 Gus)는 골육종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어. 둘은 청소년 암환자 자조모임에 나갔다가 금세 사랑에 빠지지.


서로 전화하고, 문자하고, 좋아하는 책을 권하면서 건강한 청소년들이 하는 이성교제와 다를 바 없이 친밀함을 쌓아가지. 헤이즐이 거의 찬양하다시피 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그 소설은 끝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헤이즐은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 속 인물들의 후일담을 확인하고 싶어 작가에게 여러 번 연락을 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했어. 그런데, 거스는 그 일을 해냈어.

그뿐 아니라, 헤이즐은 그 작가를 만나고 싶지만 건강과 재정이 허락하지 않아 꿈이라고 여겼던 일을, 거스가 실현되도록 도와줘.


바로 거스가 자신의 소원을 지니 재단(The Genie Foundation: 실제 존재하는 Make-A-Wish Foundation의 소설버전으로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거스와 헤이즐이 독일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그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거였어. 헤이즐은 일찌감치 13살 때 디즈니랜드에 가는 걸로 소원을 써버리고 말았거든.


둘 다 언제든 건강이 악화될 수 있는 암환자라는 염려가 있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지.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작가와의 만남도 성사되었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실망만 단단히 안겨주고 말아.

그리고, 그 여행의 끝자락. 헤이즐은 거스의 암이 온몸에 전이되었다는 소식도 거스의 고백으로 직접 들어.


거스는 무척 유쾌한 친구고, 자기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 그의 전여자 친구도 암투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었어.


서,

조금 엉뚱한 이벤트를 마련해.


자조모임을 하는 공간으로 절친인 아이작 Issac과 헤이즐을 불러서 그들이 작성해 온 '자신을 위한 추모사'를 낭독해 달라고 했던 거지.


영화에서는 여기가 눈물포인트야.

헤이즐의 추모사 조금만 인용할게. 전문을 읽으면 더 뭉클한 감동이 있겠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거스의 장례식이 있던 날, 헤이즐은 이미 세상을 떠난 거스가 그녀를 위해 비밀리에 남겨둔 도 전해받지. 무척 의외의 인물을 통해서.


거스는 암투병 전이나 투병 중에나 심지어 세상을 떠나면서까지도 기발한 위트가 있는 장난꾸러기여서 헤이즐을 비롯해서 거스, 아이작이 나누는 대화는 엄청 재미있었어.

 딱 십 대들의 감성이 폭발하는 연애와 친구들의 대화들. 암이라는 무겁고 무시무시한 무게마저도 가끔 낄낄대는 익살거리로 만드는 언어유희에 픽픽 웃음이 날 정도였어.


: 이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소설로도 영화로도 성공할 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자세한 이야기야 소설을 읽어봐야 알 것이고, 마지막 이 씨가 하고 싶은 말은?


: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이게 지금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움직여주는 것 같아. 아주 오래전에 들었지만 기억하는 말이 있어.


"죽음을 직시하면 현실이 충만해진다"


2008년 여름. 아이들 키우고 일하느라 소진, 탈진되던 시기. 남편과의 대화도 어딘가 막혀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이 상태로는 안될 것 같아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렬한 힘이 작용했어.

다니던 교회에서 '하나님의 가정훈련학교'라는 부부관계개선 프로그램을 했는데, 내가 졸라서 등록신청을 했어. 남편은 시큰둥해하면서도 따라와 줬고.


기억에 남는 활동 중에 하나, 부부 각자가 유언장을 작성하는 거야.

불이 꺼진 방에 하얀 요와 이불이 펼쳐져 있어. 거기를 중심으로 네 군에 촛불이 켜져 있고.

내가 나의 죽음을 상징하여 거기에 누우면 흰 이불로 내 머리끝까지 나를 덮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남편이 나의 유언장을 자기의 목소리로 읽는 거야.

반대로 남편이 누우면 내가 남편의 유언장을 읽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거스가 왜 헤이즐에게 자기의 추모사를 미리 써달라고 했는지, 또 그걸 직접 자신에게 들려달라고 했는지!


거스는 정말 영악할 정도로 인생을 잘 아는 친구였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헤이즐을 위한 것이기도 했던 거겠지.


몸을 가꾸고, 잘 차려입는 멋짐 말고, 마음과 정신과 생각의 멋짐이 어떤 건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이 소설의 거스를 참고 해도 좋을 듯해.  

영원을 선물한 남자이야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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