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너무 아파서 설사도 했는데, 장염이 걸린 걸까 막 밑이 빠진 듯이 변이 쏟아질 것 같아서 참나.. 이러다 아기까지 나오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씻고 쉬다 보니 어느새 저녁 12시가 넘어갔다.
'29주차 0일이 되었네'
아기를 만날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구나 싶었다.
나주로 출장 간 남편은 회식이 끝나고 영상통화를걸어왔다. 이 집에서 남편 없이 홀로 자는 건 결혼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꽁냥꽁냥 대화도 나누고, 새싹이에게도 통화너머로 인사를 건넸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지만, 임신한 이후로 더 심해졌는데 오늘도 역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되었고,잠들기 전 화장실에 갔는데 팬티에 피가 비쳤다. 임신한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란 마음이 들었지만, 임신 중에 피 비침 정도는 흔히 있는 이벤트라고들 하니 안심하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왜 이런 이벤트가 안정기가 되어서 이제야 내게 그것도 괜스레 불안하게 남편이 없을 때 발생한 걸까...'
일단 생리대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부인과에 가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마음이 불안해서 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배도 아프기 시작했다. 저녁에 설사하는 것처럼 아팠던 배는 아니었고, 자궁이 움직여서 아픈 느낌이었다.
'또 자궁이 커지려는 건가?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불안하지만 눈을 감고 잠을 재촉하면서, 빨리 내일이 다가와서 병원 가서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새싹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배를 토닥토닥 놀라지 말라며 새싹이를 다독여줬다.
새벽 3시경, 배는 계속 아파왔다 괜찮았다를 반복하는데, 주기가 규칙적인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틀 전 산부인과 정기진료에서 최근 따라 자궁 수축이 자주 있는 거 같다고 얘기드리니, 담당의사 선생님이 수축이 주기적이면 위험하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확인을 해봐야겠어서 급히 진통 주기 체크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2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30초간의 통증.
진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마음이 덜컹 내려앉아버렸다. 잠이 확 달아나 불안한 마음에 화장실에 갔는데, 동시에 핏덩어리도 쏟아졌다. 더 이상 오전 9시까지 병원 문 열기를 기다리며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바로 산부인과에 전화했다. 상태를 설명했더니, 바로 처치 오라는 대답에 옷을 걸치고 집 바로 옆에 있는 다니던 산부인과 응급실로 갔다.
'별일 아니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질내초음파 검사를 하였고, 이를 본 의사 선생님은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씀하셨다.
"자궁경부가 최장으로 측정해도 0.97cm입니다. 자궁수축이 진행되고 있고, 저희 병원에서 치료하기에는 투여할 수 있는 약이 한계가 있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 하겠습니다."
산부인과 응급실 병동에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팔에 주사가 꽂혔다. 자궁수축억제제인 라보파 투여가 시작됐고, 항생제 투여, 혹시 모를 분만에 대비해서 태아를 위한 폐성숙주사도 맞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29주 차인데 분만이라고? 아닐 거야... 별일 아닐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원하게 되는 걸 거야...'
오전 5시 30분경,집 주변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고, 응급실은 보호자가 접수를 해야만 해서 근처에 사시는 시아버님이 급히 오셨다.
오전 7시경, 전원된대학병원 고위험산모실로 입원했다. 고위험산모라는 말에 이제야 내가 많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궁수축억제제인 라보파투여는 계속되었고, 혈액검사, 출혈처치, 질내초음파 등등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심전도 체크와 NST검사(비수축검사)...
"태아가 34주가 되어야 폐성숙이 충분히 되기 때문에, 34주까지 조산하지 않고 출산을 지연시키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자궁수축이 계속 진행돼서 자궁경부가 0.5cm까지 짧아졌고, 아기 머리가 많이 내려와 있습니다. 약물투여를 통해 자궁수축을 막아 경부가 더 짧아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만 자궁수축억제제는 산모에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수시로 상태를 체크하게 될 겁니다."
오전 8시경, 자궁수축은 잦아드는 듯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숨이 차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심해져서 라보파 투여를 줄이고, 3회까지는 급여 인정이 되지만, 그 이후로는 비급여라는 트랙토실 투여가 같이 시작됐다.
오전 9시 30분경, 나주에 출장 갔다가 새벽에 내 전화를 받은 남편이 바로 첫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남편은 아직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는 거 같았다.
트랙토실이 들어가면서 부작용이 없어지자, 또다시 수축이 조금씩 진행되었다. 결국 라보파와 트랙토실 투여를 병행하는 걸로 변경하였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서 약물 부작용은 없어지고, 자궁수축도 좀 잠잠해졌다. 이대로 34주까지 버티는 게 의료진의 목표였다.
5주간 병원에 입원해서 지내다가 아이를 만나야 되다니... 잠깐이라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이런 사례가 꽤 있다는 것도 내가 겪고 나서야 인터넷에 검색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입원하게 된 고위험산모실... 왼쪽에는 지궁에 구멍이 나서 양수가 계속 새어 나오는 산모, 오른쪽에는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자궁수축과 출혈이 있는 산모가 입원해 있었다. 낮이고 밤이고 정해진 시간 없이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입원하고 조금 있으니 신생아중환자실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오셨다. 혹시나 있을 분만에 대비하여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겪게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얘기들을 늘여놓고 가셨다.
"34주까지는 아기가 폐성숙이 덜돼서 출산하게 되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두 달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퇴원하더라도 아기가 클 때까지는 폐질환을 앓으면서 클 확률이 있으며, 조산의 과정에서 뇌출혈로 사망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너무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임신을 유지하면서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던 터라, 나는 이번에도 입원해서 하루이틀 지나면 자궁경부도 다시 길어지고 멀쩡하게 퇴원하게 되겠지라는 희망적인 생각만 했고, 34주까지 입원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담당의의 설명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새싹이를 2개월간 내 뱃속이 아닌 NICU에서 키우게 되는 선택지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굳게 믿었다. 그래도 병실에 혼자 남아있게 되면 준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을 아가가 걱정돼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