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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22. 2024

마을포제를 기록하는 날..

2024 성산읍 시흥리 마을포제 가는길..

나는 시민 아키비스트다. 

올해 마을포제 조사 기록을 요청받았다. 

아키비스트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현장에 파견되는 일이다. 

설레이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조사할 마을은 "웰컴투 삼달리"드라마에서
 조삼달과 용필이 집이 있던 성산읍 시흥리다. 

우연의 일치인가? 

이 마을은 내가 지금까지 제주 토박이로 살면서 한 번도 안 가 본 마을이었다. 

올해 드라마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마을인가 보고 싶어서 얼마 전에 호기심에 다녀왔다. 

이번 주에는 구정을 쇠러 온 자녀들을 데리고 일요일에 다녀왔는데, 금요일이 포제날이라 다시 가야 한다. 

이번 주에만 2번이나 가는 거다. 인연은 인연이다.


제주의 마을에서는 

매년 초가 되면 음력 첫 정일(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해서 유교식으로 포제(酺祭)를 지낸다. 

포제는 포제단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올 한해도 마을에 무사 안녕과 태평성대를 가져주십사하고 비는 주민들의 오래된 관습으로 동제(洞祭), 리사제(里社祭)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도 아주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마을마다 오랜 관습에 의하여 저마다의 방법으로 포제가 꾸준히 내려오다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군사 정권 시절, 미신 타파라는 명분으로 마을포제를 모두 강제로 없앴다. 


80년대 후반 사회가 느슨해지면서 마을마다 하나둘씩 포제를 부활하더니 이제는 대다수의 마을에서 부활했다. 심지어 행정에서 여러 가지 명분으로 지원도 해준다. 폐지했다가 부활한 포제이고, 마을마다의 특성을 반영한 제사라서 포제의 유형이나 과정은 다르다. 그러기에 최근 매년 이런 다양한 포제를 현장에서 직접 조사를 하고 기록,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제는 보통 2박3일 기간을 잡아서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이는 축제다. 새해를 맞아서 주민들이 제청에 모여서 새해 인사도 하고, 식사를 하면서 올 한 해를 살아갈 얘기를 한다. 제사는 자시인 밤 11시-다음날 1시 사이에 하는데 보통은 자정에 한다. 이 기간에 마을을 대표해서 선정된 제관들은 집에도 못 가고 여기서 합숙해야한다. 

드디어 조사를 하러 출발하는 날이다.


시흥리까지는 1시간이 더 걸리는 내가 가기에는 아주 먼 거리다. 

부탁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나는 포제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카메라와 삼각대, 녹음 장비를 모두 챙겨서 가야 한다. 오늘따라 날이 춥다. 밤늦은 시간 야외 행사라 패딩 등 여벌의 옷을 챙겨가야 하기에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5시 반이면 제청(마을회관)에서 포제단으로 전부 올라간다고 하니까, 5시에 마을회관에서 만나죠.." 

작업을 주관하는 제주학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네, 저는 제차로 3시 30분에 출발하겠습니다."


가는 길이 멀긴 멀다. 55km, 1시간 20분..

내가 제주에 살면서 일상에서 다니는 길 중 가장 먼 길은 서귀포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다. 

49km 1시간 내외다. 보통 제주 사람들은 서귀포와 제주시를 오가는 남북 간 길을 가장 먼 길이라 얘기한다. 실제로는 대정에서 성산포를 가는 동서의 길이 가장 장거리나 그 길을 다니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조금은 도로가 여유가 있었다. 

생각보다는 여유 있게 약속 장소인 시흥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20분이나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을회관에는 사람도 안 보이고, 주차장도 텅텅 이다. 

여자 몇 사람만이 분주하게 이것저것을 정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올라갔쑤과?" 제청에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을 제거하러 주민에게 물었다.

"예, 미리 다 올라갔쑤다." 


5시 30분에 올라간다고 얘기는 했었는데, 오늘은 빨리 올라간 모양이다. 낭패다.

조용한 곳에서 이장님하고 관계자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전 인터뷰를 좀하고 올라가야 하는데...  

한 20분여를 기다려서 제주학센터 담당자가 왔다. 

우리 둘은 마을 사무장으로부터 포제단의 위치를 받고 서둘러 갔다. 


마을마다 포제단이 있다. 

1년에 한 번 포제를 지내는 곳이지만 조용한 곳, 마을의 역사가 있는 곳에 제단을 만들었다.

시흥리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곳에 포제단이 있다. 

시흥리 마을포제단(좌), 신엄리 마을포제단(우)

포제단에는 남자들만 올라간다. 

제주에서 포제는 남자들만의 의식 행위다. 반면 당제는 여자가 주인이 되는 의식 행위다. 

입구가 시끌벅쩍하다. 마을 청년들이 올라와서 제를 준비하고, 긴밤을 같이 지내려는 모양이다. 마당에는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우고 있다. 제복을 입은 제관들이 왔다 갔다 한다.



우리와 약속한 이장은 없고, 개발위원장이란 분이 맞아 주었다. 

이미 포제단에는 재물들이 진설이 되어있고, 방금 예행연습도 끝났다고 한다. 포제는 예행연습을 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다. 제단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희생이다. 통돼지 한 마리를 그대로 제단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마을은 소나 닭을 바치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은 통돼지다. 


지금이 오후 6시니 앞으로 6시간은 기다려야 제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조사, 촬영, 기록하는데 동의를 얻었다. 다행히 준비해 간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영상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마을마다 포제가 신성한 행위여서 그 과정에 외부인이 기웃거린다거나, 더욱이 영상 촬영을 허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간이 좁아서 원하던 영상을 촬영할 수는 없었는데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영상은 만들수 있을 것 같았다. 

제를 지내는 것은 보고 가겠다고 하니까, 자시가 되면 바로 제를 지내겠다고 호의도 베풀어 주었다. 


제관들과 마을 유지들은 제관들이 대기하는 방에서 자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 방에 모인 어른들과 인터뷰하면서 마을포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활동을 했다. 시흥리 마을포제의 역사, 특징,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물어보고, 관련 자료가 있어서 일일이 챙기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다행히 1988년 부활한 이후 여러 가지를 작성해 둔 자료가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이분들이 70~80세라지만 포제를 한참 지내던 시기에는 옆에서 기웃거리던 세대라 실질적인 내용을 대답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포제를 지내는 모습



밖에는 시끌벅적하다. 등을 켜놓고, 장작불을 때면서 마을 청년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청년들이 늘어난다. 현재 제주의 마을에서는 청년이 사라져감을 한탄하고 있는데 이 마을은 청년이 늘어나고 있단다. 젊은 이주민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지난달에 요 윗동네 이사왔습니다. 

오늘 마을에서 최대로 큰 행사가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개발위원장과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마을 청년이 어색하게 서있는 동년배인 듯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하는 말이다. 


"아 이렇쿠나, 이주한 청년이 이렇게 하면서 마을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는 구나.."

이게 마을포제를 해야 하는 이유고, 마을 포제가 만들어 주는 역할인데..., 좋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나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밖을 보니 한둘 늘어난 청년들의 숫자가 어느새 30여 명을 넘었다.


포제는 우리와 약속했듯이 정확히 자시가 되어서 시작되었다. 

11시다. 제관들이 제복으로 갈아입고, 집례(사회)의 창홀(진행)로 시작되었다. 한 20여 분의 시간이다. 기다란 축문 안에는 다양한 마을 사람들의 무사 안녕과 성공을 비는 간절한 바램들이 적혀있다. 2박 3일간 마을을 위해서 정성을 들였던 제관들의 바램도 같이 녹아있다. 



"오늘은 선생님들 많이 기다리카부덴 좀 빨리 제를 지냈습니다." 제를 끝내면서 초헌관이 살짝 말을 건넨다. 

그러고 보니 11시 30분밖에 안 됐는데 제가 끝났다.


이제 음복을 하면서 정리할 시간이다. 제관들과 마을 유지들이 모여서 이번 마을제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고 올 한해도 우리 시흥리 마을이 무사 안녕과,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건배했다. 


포제단을 나오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들판을 가로등과 달빛만이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흔치 않은 경험, 좋은 기운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새벽길을 달려서 집에 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이젠 좋은 꿈을 꾸며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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