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Oct 16. 2024

어느 날, 황당한 만남

생각지도 못했던 60년 만의 만남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주위에 걱정스러운 일이 있는 나에게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오랜만에 서재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될 무렵 집 전화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달에 1~2번 정도 울리는 집 전화다. 아내는 낯에, 행사장에 다녀온 피곤함 때문인지 잠이 들었다. 집 전화가 오는 경우는 여론조사가 대부분이다. 지금이 근무시간이 아니니 여론조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한밤중에 이렇게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을 없다. 혼자 살고 있는 구순 노모와 타지에서 살고 있는 딸, 군 복무 중인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겨서 오는 긴급 연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전화기를 들자, 낯선 남자가 굵은 목소리가 아내를 찾았다. 순간 당황을 했다. "이건 뭐지.."

잠시 상황을 정리하고, 누구냐고 물어보니, R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호텔에 투숙한 일본 여자분이 찾아와서 부탁하길래 전화한다고 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시는 분이고, 다짜고짜 전화번호와 이름만 가져왔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도, 찾아야 하는 이유도 통역이 안 되는 모양이다. 황당할 수밖에 없다. 아내의 삼촌분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서 전혀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서 전화할 사람은 없다. 이런저런 소리에 아내가 잠에서 깨었다. 호텔에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을 찾는 사람이 왔다니 전화를 받아 보라고 수화기를 건넸다. 한참 동안 얘기를 하는데도 아내는 고개만 갸우뚱하다가 놀란 눈만 뜰 뿐이다. 아무런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내일 만났으면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만나기로 한 오후 6시까지 우리 부부는 온각 상상의 나래를 폈다.

"도대체 누굴까, 아무것도 모르는 체 이렇게 만나러 가는 게 맞는 일일까? 뭔가 귀신에 홀린 듯.."

그래도 혹시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위안하면서 호텔 프런트로 갔다.


중년을 넘은 전형적인 일본인 스타일의 여자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서 인사를 했지만 언어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번역기 앱을 사용해서라도 얘기를 하려 했으나 처음이라 번역기 사용이 서툴었다. 양쪽 모두 다 누구인지를 서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했다. 없이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누구세요, 모르는 사람인데.."라고 시작된 대화는 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저쪽에서 본인의 아버지 이름을 얘기했다. 우리는 어머니(장모님)의 이름을 얘기했다. 일단 성이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전혀 본 적도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지만, 단편적으로 통역되는 정보만으로는 서로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혹시 사진이면 좋을 텐데..저쪽은 가지고 온 사진이 없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휴대전화의 갤러리를 뒤졌다. 장모님을 3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장모님의 사진은 없다. 혹시 봉안당 사진이라도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뒤척이다 보니 영정사진이 있었다.

"혹시, 이 사진.."슬며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순간 저쪽에서 손뼉을 치면서 맞다고 한다. 장모님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으면서 돌아가셨다는 말에 눈물을 훌쩍였다. 그분들이 어머니를 안다는 사실로, 일단 접점을 찾기는 했으나 그분들이 어머니하고 어떻게 되는지는 대답이 안 나왔다.

  



일단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자세한 얘기는 서로 직접 해보는 게 좋다고 호텔직원이 거들었다.

저녁이라도 같이하면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응하기로 했다.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족이라는, 친척이라는 관계가 확인되고 나니 훨씬 편해졌다. 같은 피라는 동질감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호텔은 나와서 음식점까지 가는 10분여의 길이다. 잘 사용하지도 못하는 번역기 앱으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가 누군지를 알려고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러나 아리송한 것은 마찬가지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럴 때 사진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휴대전화에서 부지런히 뭐를 찾더니 불쑥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노년 여자분 형제들이 저녁 먹을 때 찍은 가족사진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7남매를 두었는데 아직도 의좋게 잘살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내민 사진이다.

"아, 이 오빠..." 아내가 그 사진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십수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우리를 만나고 며칠을 같이 보냈던 분이다. 나도 얼굴은 희미하지만, 여러 날을 같이 보낸 추억이 있다. 한국어를 못해서 더듬더듬하던 어렵게 의사소통하곤 했다. 아내는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노년의 여자분이 자기의 동생이라고 했다. 7남매 중 차남으로, 오래전에 한국을 다녀갔다고 했다. 그때 잠시 머무른 게 우리 집이라고 하니까 놀라는 표정이었다. 당시 몇몇 상황을 얘기하니까 맞다고 공감을 표현했다. 이제야 접점을 찾았다. 여자분은 외삼촌의 자제분이었다. 그럼, 아내와 그분은 외사촌 자매지간이 된다. 아내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외사촌 언니를 만난 것이다. 이제야 이런저런 얘기를 마음껏 풀어 놓을 수 있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어머니(장모님)와 그분의 아버지, 두 분은 친 남매이지만 서로 다른 호적에 올려져 있고,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사이다. 부모님들은 서로 알고 있었고, 50년 전에 일본을 방문해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를 증명하는 사진 여러 장 있었다. 한번 만나고 그 후에는 교류가 없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서 들은 얘기지만 외삼촌은 그 후 얼마 없어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교류가 끊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장모님은 이런 복잡한 가정사를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해서 아내에게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아내는 외삼촌에 관한 내용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생각지도 못했던 외사촌 언니와의 해후로 멍한 시간을 보냈다.

소통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번역기 앱을 부지런히 돌렸다. 언니분도 마찬가지였다. 할 얘기, 들어 볼 얘기는 많은데 소통이 안 되니 참 답답할 노릇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가지는 감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혈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 새삼 위대함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이튼날 어머니를 모신 양지공원 봉안당을 참배하고, 모처럼의 시간을 같이 했다.

낯선 사람,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동행이었지만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승용차 안 공기도 어색하지는 않았다.


공항에 도착했다.

이젠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

만날 때까지 60~70년이 걸렸는데, 서로를 확인하는 데도 하루가 걸렸는데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

서로의 주소와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언어가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갑자기 와서 미안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오면 연락하세요, 꼭 안내할께요"

포옹을 하고 헤어지면서 내미는 처형의 휴대전화 속의 마지막 인사다..



어제, 오늘... 귀신에 홀린 듯한 시간이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봄 직한 이야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구름에 뜬 기분이다. 뭔가는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현관을 들어서니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몹시 피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움과 걱정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