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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묻어있는 나의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by 노고록
사람은 나이 들면서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한 권의 스케치북으로 남는다. 그 스케치북을 열게 하는 것들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들을 수 있는 미디어환경이 다양해지면서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습격하고 우리의 스케치북을 열어젖힌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소환되는 감정과 추억은 일과 삶에 지친 우리를 웃게 해 주는 영원한 비타민이다.




60~70년대 먹고사는 게 바쁘고 어려웠던 시절,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취미를 음악감상이라고 적던 시절, 그 취미는 부유함과 여유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학년이 바뀌면서 매번 하는 가정환경조사, 집에 전축이 있다면 그 친구는 친하게 지내야 할 부잣집 아이였다. 녹음기나 라디오만 있어도 감사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미디어가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어떤 형태로는 우리는 음악을 찾아서 들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시초였다. 70년대 들어 조금 환경이 나아지면서 카세트라디오나 휴대용 전축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친구집에 유유상종 모인다. 조그마한 방, 휴대용 전축을 가운데 놓고 팝송 LP를 올려놓고는 모두가 숨죽인다. LP가 돌아가고 노래가 나오면 내용도 잘 모르면서 흥얼거린다. 이윽고 떼창이 시작된다. 사실 떼창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잠시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이 시간은 하나의 동질감을 느끼고 나눈 우리들만의 시간이다. 다음부터는 "아! 그때.."로 통하는 묵시적인 암호다. 이 시간은 친구들 사이에서 며칠간을 우려먹고도 남을 최대의 화젯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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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전축과 카세트 라디오

80년대 들어서 시내에 음악다방이 생겼다. 화려하고 웅장한 시설과 벽면을 꽉꽉 채우고도 남는 LP들은 음악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의 폭포수가 터지는 오아시스였다. 밤낮없이 죽치고 앉아서 원하는 음악을 양질의 시스템으로 그것도 세상 편한 자세로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음악을 한다는 것,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젊음의 표시이자 특권이자 로망이었다.


청바지에 통기타가 젊음의 전부였던 시절


70년대 초 청바지에 통기타가 젊음의 상징이던 시절, 집에는 통기타를 치는 대학생 형님이 세 들어 살았다. 전혀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 분이었는데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꽤 낭만적이고 멋있게 보였다. 당시 주위에서 통기타는 신문물로 보기조차 힘들던 시절, 그 통기타가 우리 집에 있었다. 가끔 그 형님방은 기웃거리다가 재수 좋게 기타를 만질 수 있는 날은 계탄날이었다. 6줄현이 따로 또 같이 내는 소리는 신세계였다. 튜닝할 때 나던 그 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이 자주 부르던 노래는 송창식의《맨 처음 고백》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가 들려올 때면 그때 그 모습이 생각난다. 마당 평상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우리 형제들이 쪼르르 모여 앉아서 경외의 문으로 쳐다보던 모습이다. 노래가 끝나면 기타를 내어주면서 "만져"라고 얘기하고는 이내 방으로 사라졌다. 그때 그 모습이 진한 인연이 되었는지 그 형님은 우리 집을 떠나고도 꽤 오랫동안 얼굴을 보면서 지냈다.


그 통기타의 전율로 시작된 음악은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이윽고 내가 기타를 배우는 일이 생겼다. 당시는 음악을 한다면 집안에서 모두가 반대를 하던 시절이다. 친구가 기타를 샀는데 집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일이 생겼다. 할 수 없이 기타를 우리 집에 둔다고 슬쩍 가져왔는데 놀랍게도 우리 부모님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기타를 치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세 들어 살던 대학생 형님의 예방 효과였던 것 같다. 당시 최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대학생도 기타를 치는데"라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음악에 묻혀 사춘기를 보낸 나는 이후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 주위에는 그런 친구들로 가득했다. 우리들이 가는 곳 역시 음악이 있는 곳이었다. 음악이 없는 곳에는 우리가 직접 음악을 가지고 다녔다. 손에는 항상 카세트라디오나 통기타가 들려있었다. 모든 추억이나 일, 친구들의 모습은 음악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래서 듣는 음악마다에는 그 시절 그 모습과 추억이 서려있다.

그 음악만이 기억하는 그날 그 자리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 더 이상 희미한 기억이 되기 전에 "내 노래 - 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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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