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내리 설촌의 탯줄, 정천유수(正川流水)가 그립다

정천 위를 걷다

by 노고록

제주에서 한라산을 직접 볼 수 없는 마을이 얼마나 될까?


제주는 한라산을 가운데 중심에 두고 해안선을 따라가면서 타원형으로 해안가 마을이 형성돼 있다. 해안선을 갈수록 지대가 낮기에 해안마을에서 고개를 들면 모두 한라산을 볼 수 있다. 제주에서 한라산과 맞먹는 또 하나 자연은 오름이다. 사람에 따라서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400여 개의 오름은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부분 중산간지역에 위치하나 가끔은 해안마을에 있는 오름도 있다. 몇 개의 오름은 완전히 바닷가에 있는 것도 있지만 해안마을과 한라산 사이를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이 오름에 막혀서 한라산을 전혀 볼 수 없는 아주 드문 마을이 있다. 대표적인 마을이 군산오름에 막힌 안덕면 대평리와 고내봉에 막힌 애월읍 고내리다. 대신 마을은 오름에 둘러싸인 분지형 포근한 마을이 된다. 반대편은 파란 태평양을 마당으로 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 마을이 된다.



고내리가 내게 주는 느낌은 친근함이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인이나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구경거리가 있어서 자주 찾을 만한 곳도 아니다. 단지 매년 고행의 길인 고내봉 정산에 증조부님 산소 벌초 길이 전부다. 아주 오래전부터 선친에게서 들었던 이름이기에 그런 애증이 있었기에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마을이 된 것 같다.


고내리는 고내봉과 고내성창이라 부르던 고내포구 사이에 있다.

오름아래 일주서로에서 포구까지 500여 m, 동쪽 애기밴돌과 서쪽 정마루사이 400여 m사이 저지대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카름으로 나뉘어 여러 개의 자연마을이 형성되고, 이 마을들이 합쳐서 하나의 법정리를 이루는 경우도 많은데 고내리는 그렇지 않다. 민가가 집중되어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소하천을 중심으로 설촌이 되고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농어촌이다. 지금은 애월해안도로를 따라 남또리포구에서 애월리 경계 고내 환해장성까지 도로 주변을 따라 또 다른 고내리가 생겼다. 기존 마을과는 또 다른 의미의 고내리다.

정천 고내리 1366번지.PNG 정천의 물줄기, 하가리에서 내리는 물이 고내봉 물과 합수해서 마을을 관통해서 바다까지 흐른다



예전 마을의 중심에는 정천이라는 소하천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정천은 비가 올 때 하가리에서 흐르는 물이 고내봉의 동북쪽을 흐르는 물줄기가 합쳐져서 흐르는 물이다. 일주서로 고내사거리에서 고내봉쪽을 보면 하천인지 도랑인지 구분이 애매한 조그만 하천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옆에는 정골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이 하천은 일주서로 아래로 흘러서 지금의 재활용센터 옆으로 나온다. 일주서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을 살피면 커다란 배수구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물줄기는 고내로 7길을 따라서 원담체험공원까지 마을을 관통하면서 흐른다. 고내로 7길이 정천이 흐르던 물길이다. 물론 하천 물길을 따라 복개를 했기에 우리는 하천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아스팔트 위를 걸으면 된다. 그 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도로 아래를 볼 수 있게 배수구 상판이 설치되어 있다. 가끔 걷다가 궁금해서 상판아래를 살펴도 종종 이따금씩 물소리가 들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천 양옆으로 어느 정도 복개가 되고 집들이 들어선 것으로 추정은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도로 폭이 너무 작다. 정천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음 직하다.



정천(鼎川)이라는 이름은 하천의 형세나 주변 바위의 모양이 발 세 개 달린 솥(鼎)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이름이라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정내' 혹은 '고 내천'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마을은 물줄기를 따라 설촌이 된다. 고내마을도 이 정천을 가운데 두고 설촌이 된 것으로 추정을 한다. 하천에는 생활용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질 좋은 점토가 많았다고 한다. 점토는 생활용기를 만들어내는 토기를 굽는데 필요한 자원이다. 고내리 주위에서 일찍부터 토기나 관련유적들이 발굴된 것과도 무관치 않은 일이다.

하천을 따라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살았고, 이 물을 이용하여 밭을 일구고 생활용 수로 이용했다. 평소에는 건천이었다가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빗물을 넘침이 없이 바닷까지 안내하는 배수로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비가 그친 후에 마을 가운데로 잔잔히 물이 흐르는 모습은 장관이라서 고내 8경 중의 하나인 정천유수(正川流水)라는 말이 생겼다.


정천유수.jpg 고내 8경의 하나임을 알리는 정천유수 표지판

이처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면서 주민들에게 용천수와 함께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낭만의 정천은 생활의 편리라는 근대화 과정의 최대 무기를 만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1979년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 안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하천 위에 콘크리트로 덮고 도로를 만들었다. 자연과 낭만이 사라지고 문명과 편리가 하천을 집어삼켰다. 사람의 발아래 놓인 아스팔트길이 되었다. 1990년경에는 마을의 빨래터로 명맥을 유지하던 정천의 하류인 남당동 일대에 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복개 정비를 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젠 누구도 이 길에 하천이 있었고, 하천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하천이었다는 것을 알만한 흔적도 없다. 단지 고내로 7길 가운데로 군데군데 놓여있는 배수로 상판만이 이 길이 다른 길과 다른 조금은 예사롭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건 아마도 아주 일부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발견일 것이다. 정천유수의 낭만을 느꼈던 묵객의 감성만큼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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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의 물줄기 모습 상좌->상우->일주서로를 통해서->하좌->하우: 마을안길로 흐른다. 도로로 포장이 되었다

시외버스 고내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보이는 길이 정천길인 고내로 7길의 시작점이다.

좁고 휘어짐이 심한 마을 안길이다. 마을 안길이 아니고 하천길이다. 하천이 그렇듯, 고내로 7길을 따라 포구까지 내려오는 길도 굽이굽이 잘도 돈다. 옛 정천의 변덕을 알고도 남는다. 길 양옆의 모습들은 여전한 것 같다. 세월의 훈장을 단 작고 낮은 집, 돌담 집과 과수원들이 굽이도는 길목마다 있다. 돌담이 무너진 과수원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에 달린 댕유지들이 정겹다. 울담 안 오래된 댕유지 나무 한그루는 예전 제주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양약이 흔치 않던 시절, 할머니들이 손주에게 건네주던 민간요법의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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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에 있는 제주 고유의 댕유지나무들, 집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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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개된 정천 물길따라 걷는길, 가운데 배수구 상판이 정천을 덮고있다.

500여 m,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걷더라도 10분여 길이다.

하천길이어서 그런지 낮은 데로 향하는 조금은 낮은 경사길이라 금방이다. 마지막 굽이길을 돌아서면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가운데 휑하니 정자가 서있고 그 앞에는 고내포구라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보인다. 그 뒤로는 고내바당이 보인다. 바당 처음에는 고내에서 가장 큰 상뒷원이라는 원담이 있다. 멜이 드는 날 최고로 많은 사람("상뒤"는 많은 사람이라는 제주어)들이 모인다고 해서 상뒷원이라고 부른다.


이 광장은 정천의 하류로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공동빨래터였다.

매일 시끌벅적, 우당탕탕 고내리 마을에서 가장 시끄러웠을 것 같은 말 그대로 광장이었다. 고내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살아가는 얘기와 역사가 녹아있을 법한 아주 마음이 넓은 광장이다. 고내리 마을의 역사를 아는 유일한 곳이다. 1990년대 복개하기 전까지 말이다.


옛 빨래터 광장에는 고내포구라는 버스정류장과 그 앞을 지키는 정자가 있다. 애월해안도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정류장에는 잊을만하면 하루에 몇 번씩은 마을버스가 선다. 버스를 타고 오는 이들은 없다. 해안도로롤 달리던 렌터카들이 쉴 뿐이다.


해안도로를 건너서 바다로 향하니, 원담체험공원이 나온다. 그사이를 접어드니 정천의 마지막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커다란 배수구가 보인다.

고내봉을 떠난 물이 고내로 7길로 갇힌 정천을 따라 흐르다 이제야 바다라는 본류를 만났다.

민물인 하천물이 잔잔하고 넓은 바다를 만나 뒤섞여 안정을 찾은 듯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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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의 하류인 빨래터, 지금은 정자가 있는 광장으로 변했다. 정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설촌의 탯줄, 정천

고내리는 제주에서도 드물게 산(고내봉)과 하천(정천), 바다가 직접 연결된 제주다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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