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너는 들어주기만 하고 누구에게 말해?
상담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출산을 했다. 학기 중이라 바쁘기도 했고 친구 또한 혹시 모를 감염대비를 위해 100일 지나면 오라고 했다.
대학원 방학을 하고 드디어 오늘. 친구의 출산과 생일을 축하해 주러 간다. 바빠서 연락도 자주 못했고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한 손엔 티라미수 케이크와 다른 한 손엔 꽃다발을 들고 들뜬 마음을 가지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친구 집 근처에 도착하자 갑자기 비가 내렸다. 주차를 하고 손이 모자라 우산을 쓰고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망가질세라 소중하게 아파트 입구에 놓아두었다.
“워메~ 꽃이 이쁘네. 오늘 누가 생일인가 보네~”
“네! 제 친구가 출산도 하고 또 생일이어서요~^^”
“아~ 윗집 6층 애기 엄마네 인가 보네~?”
“네네~맞아요 맞아요. 6층은 아니고 5층이에요~ ^^”
동네 아주머니께서 케이크와 꽃다발을 보고 말을 걸어주셨고 무시 한 채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대답해 드리고 싶어 친구이야기를 꺼내며 맞장구를 쳤다. 우산을 접고 짐을 챙겨서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짐들을 들고 헉헉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활짝 웃으며 좋아할 친구를 생각하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더 컸다.
“나왔어~~ 정수야, 이것 좀 받아줘!!”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미리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친구의 남편인 정수 또한 나의 친구이다. 나로 인해 둘이 눈이 맞아 10년 연애 후 결혼을 했다. 중학교 베프였던 나의 친구 선희는 부엌에 있었다. 나는 친구를 향해 꽃다발을 내밀었다.
“짜잔~~!!”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게 다 모야?”
나는 쑥스러워 아무 대답하지 않은 채 머쓱해하며 거실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다가갔다.
“안녕~ 이모야! 까꿍, 이모 목소리 기억하려 나아~?”
“손씼구!!”
“알았어~ 알았어~ 안 만져 안 만져~ㅋㅋ”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서 손을 뽀드득뽀드득 꼼꼼히 씻었다.
“어 그거 아닌데!”
정수가 말했다. 내가 핸드 세정제인줄 알고 눌렀는데 이게 아니었나 보다.
“그거 우리 세윤이 똥*(항문) 닦을 때 쓰는 건데 ㅋㅋㅋ”
“아,,, 그래? 뭐 어때~ ㅋㅋㅋㅋ”
나의 잘못 선택한 세정제가 친구 아들의 항문을 닦는 거였다니 아무렴 어때 아기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되었다. 괜찮았다. 손을 씻고 나와 이제 막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기를 마주했다. 너무나 조그맣고 신기했다. 내 친구랑 너무 똑같았다. 여자친구 쪽이 말이다.
“남편도 안 사다 주는 꽃을 다 사주고 너무 예쁘다~”
“그럴 것 같아서 내가 사 왔지~ㅋㅋㅋ”
출산 후 산후 우울증도 있을 수도 있으며 여자로서 살면서 꽃다발 선물을 받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오늘 꽃다발 하나로 친구가 웃길 바랬다.
예전엔 금방 시들어지는 꽃다발이 무가치하다고 여겼었는데 요즘은 그 한순간에 라도 꽃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며 선물을 준비했고 아깝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친구와 나누었다. 학교 이야기, 나의 건강 상태와 큰 이슈들 또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 등 친구에게 다 쏟아 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그렇게 들어주기만 하면 누구에게 말해?
순간 내 머릿속이 멍 해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네가 들어주면 되지!”
“여보, 얘 이야기 들어주려면 대기 타야겠는데?”
정수가 말했다. 정수가 보기에도 내가 나의 이야기할 곳이 없어 보였나 보다.
“나 세윤이 보느라 바빠서 잘 못 들어줄 텐데~”
“아! 당연하지 괜찮아~ 나 하나님한테 많이 말해 괜찮아. ㅋㅋ”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질문으로 인해 나는 속상하다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아,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 상황이구나.’라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에서는 과대로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운영진으로 일터에서 팀장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를 생각했다. 그 사람을 위해 들어주었고 그 사람을 위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어느 자리에 있던지.
나의 속 깊은 이야기 주머니는 어느 곳에서도 꺼내지 않았다. 같이 사는 엄마에게도 말이다.
아무래도 상담대학원을 다니면서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고 도와주는 이런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서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내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누군가의 아픔을 담을 수 있는 나의 그릇이 커진 것에 대하여 기뻤다.
그리고 이렇게 나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