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확실히 약속이 많아진 요즘이다. 나답지 않게...
I들은 당일에 약속이 취소되면 오히려 좋아한다는데, 나는 그래서 애초에 약속을 잘 잡지 않는 I중의 I이다. 그렇지만 연말을 핑계로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들과의 만남은 나에게도 큰 설렘으로 느껴지는 일임이 분명하다.
나는 대인관계가 넓지도 않을뿐더러 워낙에 내향적인 집순이인 탓에 요즘 어디가 인기 있고, 잘 나가는 핫플인지 알리도 없지만 또 유명 맛집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웨이팅 길고 손님 붐비는 음식점은 일부러 피하는 편, 그렇기에 연말 모임 장소도 연말이라 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밀려있던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연말이기에 좀 더 분위기 있는, 반짝이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인기 있는 곳에서 식사하길 원했다.
'그래! 연말이니까 이럴 때 기분 한번 내보는 것도 좋지!'
나도 그들의 의견에 맞춰 연말 분위기에 맞는 장소를 검색해 보고, 나름의 후보를 정해 그들에게 제안했지만
그들은 이미 그전부터 마음속으로 찜해둔 곳이 있었던 눈치였다.
"○○에 엄청 큰 트리가 있는데 너무 이쁘더라! 거기서 만나면 어때?"
"좋아!"
"블로그 보니까 □□레스토랑! 요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엄청 잘 꾸며놨던데!!! 거기서 볼래?"
"그래! 좋아!"
"며칠 전에 △△에서 라구파스타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
그리고 거기 인테리어가 너무 이뻐!
정원 컨셉인데, 요즘 연말이라 더 화려하게 장식해 놔서 사진 찍으면 완전 잘 나와!"
"오! 그럼 거기 가자"
그들이 말한 곳은 전부 요즘 SNS에서 인기 있고 유명하다는 핫플 레스토랑!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며칠 전부터 예약이 필수인, 오픈시간부터 손님이 붐비는 곳이었다. 인터넷에서 이미 호평 가득한 후기들이 넘쳐나는 곳.
그들을 따라 간 레스토랑은 나에게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맛, 서비스, 인테리어
(다만, 테이블마다 꽉 찬 손님들로 식사하면서 대화하기엔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중앙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화려한 트리, 곳곳에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리스, 산타 조형물까지. 정말 나만 모르게 온 세상은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사실 파스타, 리조또 같은 느끼한 음식보다는 얼큰하고 든든한 한식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입으로 느껴지는 즐거움보다는 눈으로 느껴지는 즐거움이 더 큰 셈이었다.
여길 봐도 번쩍, 저길 봐도 번쩍.
'이래서 다들 여길 찾아오는 거구나...! 연말에 모처럼 이런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하니 좋네!'
그러나 3주 연속, 느끼한 양식을 먹고 나니 이쯤에서 간절해지는 나만의 소울 푸드가 있었으니, 바로 감자탕!
'아... 이번달에 약속이 아직 더 남았는데... 감자탕 먹자고 하면 좀 그런가...?
난 정말이지... 당분간은 사람 북적북적한 핫플은 그냥 지나가는 것도 싫어...! 느끼한 양식은 쳐다보기도 싫어! 역시 나는 감자탕이 최고야...'
연말은 꼭 분위기 있는 핫플에서 보내야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