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다.
학창 시절과 결혼 전까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다. 누구나 그렇듯이..
결혼을 한 후 ㅇㅇ엄마로 불렸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오히려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이 어색했다.
ㅇㅇ엄마간 된 후 나의 역할은 엄마로서 충실했고 내 인생 그처럼 집중하고 살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집중했었다. 아이를 보살핀다는 것은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엄마의 마음이 언제 준비가 되느냐에 따라 빨리 독립할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을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마음에서 아이를 독립시킨 건 아들이 열여섯이 되던 해였다. 오랜 기간 아이에게 집중하고 치열하게 로드매니저로 살다가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부터다.
그때 나는 솜뭉치가 다 빠져버린 곰인형 같았다. 그 머나먼 길을 혼자 비행기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방에 들어서자 오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현관 열쇠와 리모컨등. 아마도 집을 나서기 전 정리해 둔 모양이었다. 아들의 방을 둘러보다가 책장에 꽂혀있던 아들의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보게 됐다.
일기장을 넘기다가 한지점에서 또다시 오열했다."오늘은 목요일이다. 내가 가장 힘든 날이다. 영어, 수학, 수영까지 너무 많다"그렇게 힘들면서 아들은 한 번도 학원 가기 싫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부모님의 의견대로 살아서 불만이었던 것을 아들에게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책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들은 엄마가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그 말이 나는 더 고마웠다.
그렇게 속이 텅 빈 상태로 지내다가 드디어 "서예"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내 인생 2막이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일이 생겼고 열심히 했고, 너무 좋았다. 학원가는 날이 기다려졌고 밤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천정에 자음들이 떠다니기도 했다. 그땐 정말 미쳤었던 것 같다. 배우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스승님께 아호를 받게 되었다. 그 순간의 환희는 잊을 수가 없다. 원래 내 이름도,ㅇㅇ엄마도 아닌 나의 두 번째 이름. 내가 작가명으로 쓰고 있는 나원. 아름다울 나, 으뜸 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뜻이 너무 맘에 들었다.
아름다움도 으뜸도 나와는 관계가 없는 말이라서 이름으로 쓰게 된 것이 기뻤다. 그때부터 내본 명 앞에 아호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