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러브레터

마지막을 알 수만 있다면..

by 나원

나의 아버지는 평생을 청렴한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하셨다.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는 아버지를 엄마는 답답해하셨다.

청렴한 경찰관으로 존경받는 분이셨지만 집에선 늘 엄마의 불만 가득한 눈총을 받으셨다. 일정치 않은 출퇴근시간, 며칠밤을 새우는 건 기본이고 그런 일에 걸맞지 않은 얄팍한 월급봉투 때문에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평소에 말이 없으셔서 집에 오시면 식사하시고 주무시는 게 전부였다. 나를 포함한 여동생 둘은 그런 아버지가 한없이 어렵고 큰 존재였다. 돌아가시고 난 뒤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늘 과묵하고 어려웠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실 때면 그제야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런 날은 자는 우리들을 깨워 용돈도 주셨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들에게 똑같은 옷을 사다주시고 다른 건 몰라도 밥은 먹었는지는 꼭 물어보셨다.

한때는 아버지에게 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몸이 아프신 와중에도 식사는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고 늘 한 공기를 비워내셨으니 말이다. 그런 아버지는 은퇴 후 곧바로 소파지킴이가 되셨다.

삼시 세 끼를 차려내야 했고 외출도 맘 놓고 하지 못하는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그중에서 제일 힘들어하셨던 건 말이 없으신 거였다. 필요한말 이외에, 아니 필요한말도 엄마가 알아서 짐작해야 했을 정도다.

내가 글씨 쓰는 일을 하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를 닮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어릴 적 기억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글씨 쓰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필체가 좋으셔서 아버지의 글씨는 감탄스러웠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승진시험공부를 하셨는데 우리가 잠든 사이 책상이 있는 우리 방으로 오셔서 공부를 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아버지가 요약해 놓은 글씨들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퇴근 후 고단한 몸으로 그 메모장을 들고 우리 방에서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의 크고 든든했던 뒷모습.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초라한 몸이 되셨을 때 그 모습만으로 울컥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처음 회원전을 하던 날, 아버지는 내 작품을 보러 오셔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려고 하셨는데 떨리는 손이 제어가 안되자 펜을 내려놓으시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하셨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필체가 자존심 상하셨을 테고 그런 모습을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철없는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그 후로도 몸이 더 안 좋아지셨고 아버지의 글씨 쓰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엄마의 예순일곱 번째 생일날 아버지는 엄마에게 편지를 쓰셨다. 몇 줄 되지 않는 글씨에서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렵게 쓰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 마음표현이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늘 불만이었던 엄마.

이 편지가 아버지의 마지막 러브레터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편지를 엄마는 내게 내 글씨로 옮겨주길 원하셨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신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가끔씩 생각한다.

큰딸에게 늘 말없는 응원을 보내고 계셨던 아버지.

누구보다 가까워지고 싶어 하셨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철없는 큰딸. 지금도 아버지란 호칭은 어색하다.

그냥 아빠..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나에겐 그냥 아빠다.

아빠..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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