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교수께 불만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해볼 수 있는 건 해보자는 생각에 어렵사리 E 교수께 말을 꺼냈다.
"선생님과의 작업이 싫은 건 절대로 아니에요. 하지만 저도, 주변도 달라져야 해요..."
E교수 생각은 달랐다.
“선생님은 음식의 레시피 같은 거야. 레시피를 많이 모은다고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하나의 레시피를 제대로 숙지하고 자기만의 요리법을 만들어야 해. 같이 고민해 보자.”
그렇게 두 달이 지났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용용은 용기를 내어 P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네 연주를 본 적 있어. 가르쳐줄 테니 와라.”
용용이의 상황을 들은 후 P교수는 흔쾌히 대답하고 직접 E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용용은 당황했다. E교수는 아직 용용이 떠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쾌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E교수는 용용을 불러 저녁을 사주며 그동안 열심히 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며 덕담을 했다.
P교수와 새롭게 작업을 한지 두 달이 지났나? 용용이 말했다.
“엄마, 피아노를 안치고는 못 살 것 같아. 계속하고 싶어. 다른 거 할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아노가 너무 좋아.”
용용은 호된 슬럼프를 겪고 나서 다시 피아노를 친다. 음대에 진학했고 이젠 프로 연주자가 꿈이다.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여전히.
연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안 된다면 어떻게 생계를 마련할까? 고민을 하면서도.
연주하고 싶은 음악이 있고, 좋은 소리, 감동을 주는 음악을 만들려고 분투하고, 집에서, 학교에서,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고민한 음악을 들려주는 게 피아니스트의 삶이 아니면 무엇일까. 용용은 어릴 때 꿈을 이뤘다. 그녀는 이미 피아니스트다.
하고 싶은 게 생기니 용용은 다시 생생해졌다. ‘하고 싶은 것’. 그건선물이다. 그건 내가 뭔가를 잘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 운 좋게 받은 귀한 선물이다. 그걸 딸 덕에 배웠다. 이전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랐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현실성이 없다며 버리려고 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