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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쓰는 곰 Apr 21. 2024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베를린 곰 편지>

하고 싶은 일이 물리치료는 아니었다. 

자연치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마침 마음에 드는 학교를 발견해 문의하니 입학허가를 받으면 체류허가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학교에 그런 외국인 학생이 있다고 했다.

입학허가를 받고 태평하게 체류허가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절당했다.

"이 학교엔 체류허가 받은 외국인 학생이 있다는데 왜 나는 안되죠?"

심사관이 말했다.  독일의 자연치유학학과 중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원칙적으로 없으며 자기는 한번도 허락한 적이 없으므로 그 학교에 있는 학생은 자기에게서 허가서를 받은 게 아니라고. 말인 다른 심사관에게 갔다면 허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아닌가.

다시 절감했다. 독일은 케바케의 나라임을. 독일인이 칼같이 정확하다는 건 편견임을.

심사관은 단호했다. 열흘 안에 대안을 찾아와야 독일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허둥지둥 대안을 찾던 중 물리치료학과가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필요서류를 마련해 등록했고 체류허가 받았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몇 과목이 자연치유학과에서 배우는 것과 같아 선택했지만 물리치료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낯선 과목들을 어설픈 독어실력으로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쉰 넘어 시작하기엔 물리치료라는 일이 육체적으로 버거울 것 같았다.          


현실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8시부터 15시 반까지, 비는 시간 없이 빽빽하게 수업을 들어야 했다. 생리학, 해부학, 병리학, 신경학 등등의 이론 수업들, 다양한 도수치료테크닉, PNF, 치유움직임, 운동치료 등등의 실기수업들…. 낯선 분야를 독어로 듣고 필기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 교과서는 없다. 수업내용을 필기하고 참고도서로 공부하고 정리한 게 ‘말하자면’ 교과서다.      


내 교과서 초판은 동그라미 공란이 40%였다. 알아듣지 못한 단어들은 동그라미로 표시했다가 쉬는 시간 동료들에게 물어 채워 넣었다. 그래서 내겐 쉬는 시간도 없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수업시간에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끙끙대며 복습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많았다. 용용이 맛있는 밥 해주는 일과 그 외의 크고 작은 집안일과 해결해야 할 자잘한 혹은 중요한 서류 작업에 공부까지.

고단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한 선생님이 물었다.

“넌 수업에 관심이 없니?”

“아니, 관심 많아. 그래서 다 이해하지 못해도 과제며 복습을 꼬박꼬박 하는 걸.”

“그래. 넌 다 이해하지 못하지. 그런데 왜 한 번도 질문을 하지 않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동료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는 걸 일일이 질문을 하면 수업에 방해되잖아.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모르는 건 물어야 해. 그게 동료를 돕는 거야. 혼자 해결하는 거야 말로 이기적이지.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넌 제대로 공부하는 게 아냐.”


낯선 사고였다. 하지만 차츰 이해되었다.

나처럼 질문을 한 번도 안 하는 동료는 없다. 질문을 했다하면 뻔 한 것, 당연해 보이는 것인 동료도 있다. 내 입장에선 그 친구가 질문하면 잠깐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이해가 빠른 사람은 아주 지겨울 것 같은데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상하네... 하다가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은 질문도 대답하고 또 질문을 하면 이야기가 확장되고 나도 그걸 몰랐다는 걸 알아채게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이 옳았다.

남에게 폐 될까 봐 질문을 하지 않는 게 폐다. 함께 사고를 확장할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한다.

생각이 거기 미치자 질문하려고 애썼다. 말이 어눌해서 부끄럽지만 질문했다. 그러자 선생님도 동료들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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