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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쓰는 곰 Apr 29. 2024

네 몸을 싫어해서

<베를린 곰 편지>         사진: 처음 여우를 만난 거리

해질 무렵 산책길에 적갈색 작은 개를 만났다.

둘러봐도 주인이 없다.   

베를린 도심 복판인데 설마... 하면서도 걸음을 멈췄다.

삼각얼굴에 뾰족 선 귀.

녀석은 제 몸보다 길고 풍성한 꼬리를 흔들며 여유 있게 내 앞을 지났다.

으앗, 정말 여우다!


자동차, 자전거가 다니곰만 한 맹견도 심심찮게 산책을 나오는 길이었다.

맹견은 사람에겐 온순하지만 야생동물을 보면 무섭게 달려든다. 나도 아는 걸 녀석이 모를 리 없는데 서두르는 기색 없다. 어쩜 그리 여유로울까? 어정쩡하게 멈춰 선 내가 오히려 여우의 길로 잘못 들어선 것 같았다. 


그 뒤로 간혹 여우를 만났다.

그때마다 우아하게 살랑이는 녀석의 꼬리를 넋 놓고 봤다.  

아주 버거울 것 같은 꼬리를 녀석은 가볍게 들어 올려 보는 이를 홀리듯 살랑일 줄 안다.

몸을 우아하게 부리는 그 영리함을 배우고 싶다.




드물게 찾아오는 3월의 화사한 햇살에  홀려 산책을 나섰, 맞은편 건물 1층 발코니에 한 여자가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가슴을 드러내고 담배를 피우면서. 유독 검고 커다란 유두와 접힌 뱃살이 잘 보이는 거리다. 출입금지 구역에 잘못 들어간 사람처럼 흠칫 놀라 눈길을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학교에서도 맨몸에 흠칫하는 일이 많았다.

바로 실습시간.

서로 실습 상대가 돼 주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반바지와 민소매티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학교에 탈의실이 없다. 남녀 모두 강의실에서 갈아입는다. 팬티를 안 입고 와서 발가벗고 옷을 갈아입는 동료도 있는데 그럴 때흠칫했다.


동료들은 거리낌 없이 벗는다. 그러고 싶거나 그럴 필요가 있으면.

강의실에서, 호숫가에서, 잔디밭에서, 사우나에서, 병원에서, 발코니에서...  

브라를 입고 말고, 유두가 보이고 말고는 논란거리도 아니다.

입고 싶으면 입고, 벗고 싶으면 벗는다.

다들 그러니까 어느새 익숙해져 더 이상 맨몸을 봐도 흠칫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다.


에프가 물었다.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거 싫지 않아?”

"싫어."

"그런데 왜 강의실에서 갈아입지 않아?"   

"사람 많은 데서 몸을 드러내는 게 창피해."

"몸이 창피하다고? 넌 네 몸이 싫으니?"

에프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 말했다.

"몸이 창피한 게 아니라 사람 많은 데서 몸을 드러내는 게 창피해."

에프가 말했다.

“같은 말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몸을 위해 운동도 하고 몸에 나쁜 음식은 되도록 안 먹으려고 노력하는 내가 내 몸을 싫어한다니.  

내겐 남녀가 같이 옷을 갈아입는 문화가 낯설 뿐인데.

그저 그럴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편하게 교실에서 갈아입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끄럽다! 그러면 안 된다!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이런 경고 알람이 울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안될 것도, 위험할 것도 없는데 경고알람은 왜 울리지?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친한 동료 에프와 엠에게 물었다.  

"나도 너 같을 때가 있어."

평소 브라를 입지 않고, 옷을 갈아입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을 드러내는 에프가 이렇게 말해 놀랐다. 에프가 말했다. 여름에 암벽등반이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 남자들은 웃옷을 벗지만 자기는 암만 더워도 그러지 못한단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수업시간엔 괜찮아?"

"그럼. 필요한 일이잖아."

더워 죽겠을 때도 벗을 필요가 있는 것 아냐 했더니 에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엠이 말했다.

"난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은 너랑 비슷할 것 같은데. 좀 늙었거든."

째려보니 엠이 실실 웃으며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엠이 말했다.

"필요할 때 벗는데 왜 창피해?"

그러게. 왜 그럴까?


에프의 일상에도 몸과 관련된 알람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알람은 내 것보다 훨씬 관대하다. 지레 호들갑스럽게 울리지는 않는다. 문화적인 배경도 있지만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에프는 산책길에 만난 여우처럼 몸을 영리하게 쓸 줄 안다.

강의실에 들어올 때 그녀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함께 이야기하다 정적이 흐를 때도 노래를 한다. 여자치고는 낮은 목소리, 윤기 있고 안정된 목소리는 듣기 참 좋다. 노래하다 흥이 나면 왈츠, 가가댄스, 스윙을 춘다. 눈을 감고 자기 앞에 파트너가 있는 듯 중얼거리며 움직이는 몸짓이 아주 부드럽다. 그럴 때 그녀 주위엔 몽글몽 생기가 일렁이는 듯하다. 치료운동실에 가면 제일 큰 짐볼 위에 꿇어앉아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쓰다 바닥에 떨어지며 깔깔 웃는데 그 모습이 너덧 살 아이처럼 사랑스럽다.


그런 그녀도  때는 몸을 꽁꽁 숨기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 몸이 싫었다. 갑자기 커진  가슴을 브라로 꽁꽁 감싸고 늘 헐렁항 후드티만 입었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처럼 야실야실한 옷을 입고 싶지만 자기 몸이 싫어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말했다.

자기가 자유로워보인 다면 그건 건 몸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하려고 애쓴 결과라고. 몸이 싫어서 몸을 드러내고 싶지 않냐고 물은 건 그녀의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에프는 24살이고 난 51살이었다. 그녀보다 두 배를 더 살았지만 몸에 대한 생각과 경험은 그녀의 것이 훨씬 깊고 넓었다.    


에프가 말했다.

“30도가 넘으면 누구나 웃옷 벗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자고 할까?”

내가 부러 센 척을 했다.

"겨우? 아예 발가벗는 법을 만들자고 해야지."

엠이 말했다.

“정하는 건 별로인데. 그래야만 하면 그러기 싫을 걸.”     


얼마 전 베를린에서는 공공 수영장에서의 여성 상의탈의가 전면 허용됐다. 여성의 상의탈의금지가 성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여성이 공공 수영장에 가슴을 드러내고 입장했다 제지를 당하자 소를 제기했던 것이다.


판결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일은 지금까지 베를린 공공수영장에서 여성의 상의탈의를 제한해 왔다는 것이다. 여름이면 도심 광장의 잔디밭에 가슴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여성들이 종종 보이고, 남녀 혼탕도 있는 베를린이지만 몸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란 뜻이다.


역시.

몸에 관한 논쟁은 잘라 결론짓기 힘든가 보다. 몸과 성에 관한 내 생각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나마 윤곽이 잡힌 생각은 몸과 성에 관한 알람이 '수치심'일 땐 그 알람을 의심하자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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