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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쓰는 곰 Apr 07. 2024

저지하고 저지르고 I

<베를린 곰 편지>

용용이 어렵게 입학한 음악학교엔 입학쯤 대수로운 일이 아닌, 재능 있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학생이 많은 음악학교는 세상에 많다.

하지만 이 많은 재능 있는 학생들이 모두 연주자로 살아갈 수는 없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연주무대가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바흐 뮤직 김나지움에 입학한 첫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용용이가 말했다.

“엄마,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  

 용용은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을 예술가로 대하고 개성과 욕구를 존중하는 것도, 친구들이 자기 음악에 몰두하느라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도 좋아했다. 보통 어울려 점심을 먹지만 혼자 먹고 싶으면 별말 없이 조용한 곳으로 간다. 다들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부지런히 갈고닦은 친구들 연주는 훌륭했다. 용용이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그 아이들처럼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만’은 생각만큼 작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간 콩쿠르 1라운드를 통과하고 2라운드를 준비하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져 대회가 취소되었다. 힘껏 달려보려고 잔뜩 긴장하며 기다리다 맥이 빠져 그랬는지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너무 무리던 탓에 손에 건초염까지 생겼다. 건초염으로 연습도 못하고 학교도 가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며  용용이 변했다. 코로나 때도 연주가 출중한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 연주할 기회들이 있었지만 용용은 아니었다. 무대에 설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누구나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을 텐데….

내겐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용용이를 꿈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도 돕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근데 이제는 용용이에게 나와 같은 생각이 생겨버렸다.

몸이 회복된 후 연습시간이 줄고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 너무 힘들어.”

연습을 무지하게 열심히 해서 이제 뭔가 된 것 같다 해도 이미 무대에서 인정받은 친구의 소리를 들으면 자기 음악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좋은 소리가 안 나는지 억울하다고 했다.  

맛있는 거 만들어주고 같이 산책이나 많이 하자, 그럼 스스로 극복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뭔가 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열심히 해보지 왜 저러나 속이 타서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쳤다.

“잘하는 친구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십 수년을 네가 2년간 해 온 것만큼 매진했을 텐데 네가 억울하다고 말하면 그 애들이 더 억울하지 않겠니?”

눈치코치 없는 말을 해 용용이를 답답하게도 했다. 좋게 할 이야기도 서로 감정이 격해지기 일쑤였다.


이반초바 선생님은 안타까워서 어렵게 연주기회도  만들어주시며 너의 재능을 하찮게 버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용용이에게서 더 이상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E교수님 당신도 슬럼프를 겪었다고, 당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호되게 슬럼프를 겪는다고, 그럴 땐 얼마간 피아노를 치지 않고 쉬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쉬어 봤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1년쯤 지나자 용용이 몸이 바짝 말라서 160센티미터 키에 몸무게가 36킬로가 되었다. 척추, 갈비뼈는 물론 골반뼈, 팔다리뼈가 인체골격모형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중목욕탕에 갔더니 사람들이 흘끔 대고 어린아이들이 엄마에게 저 사람 이상하다고 속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또다시 내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때구나 싶었다. 용용이에게 다른 걸 할 수 없을까 봐 피아노를 붙들고 있는 거면 그러지 말라고, 그만둬도 괜찮다고 했다. 길은 계속 새로 찾으며 살아야 하고 살다 보면 찾아진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용용이 펑펑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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