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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쓰는 곰 Mar 24. 2024

이반초바 선생님 I

<베를린 곰 편지>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그리고 들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 숲을 걸어 20분 남짓. 이반초바 선생님 댁까지 한 시간 반쯤 걸렸다.


선생님은 용용이 연주를 말없이 위층에 올라가셨다.

또 거절이구나.

가타부타 말씀해주시지...

대로 나가야 하나...?

그러는데 선생님이 내려와 호두 두 알을  용용에게 주셨다.

“흔들어 봐.”

선생님은 용용이 호두 흔드는 걸 가만히 보셨다.


뭘 보려고 하시나?

잘 흔들면 가르쳐주시려나?

어떻게 흔들어야 잘 흔드는 거지?

배우고 싶은 맘이 간절해서 이런 생각 했다고 시간이 지난후 용용이 멋적게 말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알이 꽉 소리지? 너도 이런 소리를 내야 해.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 지금 네 소리는 속이 바짝 마른 호두알 같아.”

용용이는 너무 좋아서 감사하다는 말도 못 했다.


길이 멀었다.

왕복  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상관없었다.

드디어 선생님을 만났으니까.

용용이는 밥 먹고 자는 시간도 아껴 연습을 했다. 주말엔 열 시간도 넘게.


어느 날, 선생님이 연습 시간을 물으셨다.

용용은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선생님이 고개를 저으셨다. 

"이제부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하루 4시간 이상은 연습하면 안 돼. 일요일엔 잘 쉬고."

“네 나이에 4시간 이상 하면 그건 연습이 아니라 노동이야.”

“휴일엔 책 읽고 산책하고 공연과 전시를 봐. 그리고 머릿속으로 연주를 해.”

늦게 시작해서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용용이는 불안해하면서도 선생님말씀대로 했다.


선생님은 배운 그대로 연습해 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넌 학생이 아니야. 예술가이고 피아니스트야. 예술가는 자기 것을 창조해야 해.”      


댁에 가면 언제나 현관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꼭 안아주는 선생님은 금빛이 도는 은발의 자그맣고 온화한 노인이다. 그런데 레슨을 시작하면 변한다. 선생님의 지적은 온화한 노인의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딱 맞게 잘 벼려진 칼 같다.


페달 쓰는 걸 훈련할 때다.  

“그것보다 얇게 밟아, 4분의 일만. 아니, 조금 더 깊게. 좋아!”

'레'를 먼저 치고 밟아야 소리가 지저분하게 섞이지 않지.”

“그렇게 늦게 밟으면 소리가 끊겨. 손가락을 천천히 떼고.”

“그건 너무 늦어. 템포가 안 살아.”

“손가락을 조금만 더 펴서. 엄지 손가락은 오른쪽 끝을 쓰고. 아니, 그렇게 팔에 힘이 들어가면 안 돼.”

“또 울림이 지저분해.  다시.”     


불과 몇십 분의 1초, 아니 몇백 분의 1초...?

선생님은 상상도 할 없을 정도로 시간을 잘게 쪼개어 타이밍을 잡아낸다. 그 순간에 조절해야 하는 것은 그저 열 손가락과 두발 아니다.

열손가락 끝의 어느 부분을 써야 좋은 소리가 나는지 찾아낼 땐 과장을 보태자면 손가락 끝이 마치 축구장처럼 넓게 느껴진다.

손가락 끝의 어느 부분을 쓸지, 손가락을 얼마나 올렸다가 건반을 칠지, 칠 때 속도는 어느 정도로 할지, 이때 팔목과 팔꿈치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두 알아채고, 힘을 어느 정도 빼고 넣야 하는지, 두 발로 페달 세 개를 어느 타이밍에 몇 분의 몇 수준으로 밟아서 울림을 조절할지 조율한다.


하려는 게 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묻고, 원하는 소리를 내려고 고군분투할 땐 멀찍이 앉은 나까지 긴장하여 주먹을 꽉 쥔 채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마침내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선생님은 “그래, 바로 그거!” 하고 고음의 환호성이 터뜨리는데 영락없이 상기된 아가씨의 탄성이다. 두 사람의 얼굴은 벌겋고 옷은 땀에 젖어있다.


쇼팽 에뛰드를 칠 때다.

나비가 나는 것처럼 이라고 하셨는데 암만해도 뭔가 아쉽다 느끼셨는지 레슨을 멈추고 창밖을 보셨다. 그러다 소녀처럼 소리를 쳤다.

“용용, 저기 봐. 나비.”

흰나비가 나풀나풀 날고 있었다.

“나비는 저렇게 날아. 매끈하게 나는 게 아니라 저렇게.”

나비를 한참 보더니 신기하게도 용용이의 에뛰드가 나풀나풀 날았다.


선생님은 테크닉뿐 아니라 느낌이나 감정도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쓰신다. 부드럽게, 광활하게 이런 식으로 모호하지 않다.

어느 날 선생님이 은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맞으셨다.

“선생님, 정말 멋져요.”

“그래? 이건 용용, 너를 위한 드레스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난번 레슨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긴 매끄러운 실크가 고르게 접혔다 미끄러지듯 펴지는 것처럼.”

용용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그 부분을 아쉽게 연주하자 선생님은 딱 멈추시더니 용용이 손을 잡았다. 함께 실크 드레스 자락을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다섯 겹, 여섯 겹, 일곱 겹…, 접었다가 사르르 펴지게 했다.  


어떨 땐 내고자 하는 소리에 착 들어맞는 억양, 발음을 가진 단어들을 괴상하게 조합하여 배우처럼 감정을 잡고 말하면서 연주하게 하신다. 그래도 안 되면 숙제를 내신다. 네 모국어인 한국어로 내가 말을 만든 것처럼 해 보라고. 춤곡을 연주할 때 그 춤을 춰보도록 하시고 몇십 년 된 당신의 누런 악보를 보여주고 거기 적힌 구식 손가락 번호를 써보며 용용이 손에 맞는 손가락 번호가 무언지 찾게 하신다.


선생님의 오래된  피아노 옆엔 선생님의 스승이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반초바 선생님은 가끔 아라우에게서 배울 때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길 배울 때 팔의 힘을 빼라며 팔꿈치 쿡쿡 찌르셨는데 기분이 별로였어, 그런데 여길 치면 그 느낌이 생각나서 힘을 빼게 되지... 같이 사소한 이야기들.


아라우의 스승은 크라우제, 크라우제의 스승은 리스트, 리스트의 스승은 체르니, 체르니의 스승은 베토벤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용용이 피아노의 뿌리가 무려 베토벤이라며 웃는다.        


한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선생님은 꼭 무대에서 연주할 기회를 주셨다. 어느 날 연주가 끝나자 한 할머니가 물었다.

“이렇게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니?”

용용이는 옆에 계신 선생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기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재밌네. 내 힘은 네게서 나오는 걸.”

그들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6월.

음악학교 입시 때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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