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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을 월요일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워료일이 뭐에요

by 방구석 공상가

"월요일"


소리내어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뭐라고 읽었는가? 월요일이라고 읽었다고? 음..


당신이 서울/경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워료일"이라고 읽었을 것이다.

당신이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월요일"이라고 읽었을 것이다.

그 외의 지역은.. 모르겠다. 나는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


나는 언어 습득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지역언어 또는 외국어를 '현지'에 가면 하루 이틀이면 아주 어렵지 않게 원하는 바를 얘기할 수 있다. 현지인 수준은 아니고, 4살 수준까지는 금방 되는 것 같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한 일은 특허청에서 주관하는 취업관련 교육을 들은 일이었는데, 장장 한달간 진행된 이 교육에서 함께 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가 경상도 사람인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저번주에 경남에서 올라왔어요. 네? 그런데 어떻게 사투리를 안써요? 지금도 내가 부모님이 경남에 계시다고 하면, "부모님이 이사를 가신 거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렇게 사람들이 내가 '경밍아웃'을 했을 때 놀라곤 하는 까닭은, 다른 걸 떠나서 내가 사투리로 인식되는 억양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밈이 유행을 하면서 내가 경남에서 올라온 것을 알고있는 동료직원들은 나에게 달려와 "니가가라 하와이" "블루베리 스무디"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에요" 등을 시켰는데, 실망만 하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나는 서울말ver. 경남사투리ver. 모두를 들려주곤 했는데, 기분이 좋거나 일하기 싫으면 경북사투리ver. 부산사투리ver. 까지 추가공연(?)을 하곤 했다.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사 사람들과 국밥집에서 밥을 먹다 "이모!"하고는 다른 말을 못하고 반찬만 뚫어져라 본 적이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눈치빠른 차장님께서 "여기 부추 조금만 더 주세요"라고 말씀해주셨는데, 평생 '정구지'만 알고 살아온 내게 '부추'는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였다. 정구지가 사투리인건 알고 있는데 그래서 서울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번역(?)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점퍼 길이를 묘사하며 "요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거기 있던 모든 서울 친구들이 웃으며, '억양은 하나도 없는데 단어는 그대로야 왜?'라며 놀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서울 초보일 때 얘기지, 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단어는 로컬 단어로 교체되었고, 억양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게 웬일. 내 뼈에 새겨진 고향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단어도 똑같고 억양도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발음기호가 달랐다. 한 신입 직원이 나에게 와서, '과장님 경남 분이시죠?'라는 질문을 하는게 아닌가? 놀라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경상도에서 오신 분들은 월.요.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아 이런, 억양에 단어도 신경썼는데 이제 발음까지 신경써야 하는건가?


물론 사투리를 쓴다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나의 경우 자연스레 지역언어를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연스레 나오는 부분까지 바꿀 생각은 없다. 사투리는 고치는게 아니라 바뀌는 거니까.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가끔 의식이 될 때가 있다. 월요일에 봐~ 응 워료일에 봐~ 도대체 서울 애들은 월요일을 월요일이라고 하지, 어떻게 워료일이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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