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드디어 ISTJ가 되었다. MBTI에 좋고 나쁨은 없다지만 N보다는 S를 F보다는 T를 P보다는 J를 원했던 그녀였다. 그러다 드디어 냉정하면서 멘탈도 강하고 계획적인 ISTJ가 된 것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INFP였던 은영은 30여 차례가 넘어가는 검사 끝에 자신이 원하는 MBTI에 도달했다. 검사 중 의도적으로 ISTJ에 맞는 성격의 선택지를 한두 개 고르긴 했으나 검사 결과에 크게 영향은 끼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MBTI 결과 화면을 캡처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INFP에서 ISTJ로 바뀐 것이 당황스러우며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의 코멘트도 추가했다. 그게 ISTJ의 쿨한 모습 같았다. 이어지는 스토리에는 'ISTJ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ISTJ가 화나면 무서운 이유' 등등 ISTJ의 특징에 대한 사진들을 공유했다.
은영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ISTJ에 부합하는지 의식했다. 모임에서 은영의 의도된 차가운 말투에 친구들이 섭섭해하면 자신이 드디어 T다운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내심 기쁘곤 했다.
ISTJ가 되자 삶의 많은 부분이 편해졌다. F였을 때는 상대의 마음이 상할까 꺼내지 못했던 진실한 말들이 편하게 나왔다. 친구들이 섭섭해 하면 자신이 T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이면 충분했다. 이런 은영의 변화에 주변 친구들이 꽤 떠나가긴 했으나 자신의 T적인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극 F들이라 생각하며 견뎠다. 며칠 전까지는 F였던 은영이었지만 F들의 소심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 것이다.
은영의 절친이었던 승지와 고민 상담을 나눈 날이었다. 승지는 남자친구와의 불화에 대해 털어놨다. T가 된 은영의 냉철하고 현실적인 답변을 원하는 것 같아 기뻤다.
-그래서 내가 승민이한테 여자랑 그렇게 단둘이 있으면 질투 난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막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주냐는 거야…
-엥? 근데 그건 네가 잘못한 게 맞는 거 같은데? 자존감이 충분히 높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잖..
-야 이은영! 너 저번에 민상이랑 연애할 때 나랑 똑같은 문제로 헤어지고 민상이 욕 그렇게 했잖아;; 너는 괜찮고 나는 안된다 이거야?
-야 미안해.. 내가 T라 이런 거 이해 잘 못해주는 거 알잖아
-뭐가 T야. 너는 상대방 감정 다 무시하고 너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게 T라고 생각해?
-너 왜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어.
-너야말로 왜 그래. 이런 고민 상담은 네가 제일 많이 했잖아. 맨날 울면서 남자친구 흉이나 볼 때 나는 논리적으로 말 못 해서 안 한 거 같아? 너 찡찡거리는 거 듣기 싫어도 힘들어보이니까 참는거야. 네가 지금 이러는 거 애들한테 T라는 소리 듣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엄청 티나 너.
-허... 참... 너 진짜...
T다운 멋진 반박을 발사하고 싶지만 목에 무언가 걸려 단단히 막고 있는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은영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박차고 나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절친인 승지와 싸웠다는 것보다 T인 자신이 F같이 눈물만 흘렸다는 것과 F인 승지와의 말싸움에서 졌다는 분함이 컸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은영은 ISTJ 특징글을 보면서 자신의 성격과 닮은 점들을 찾으려 노력했다. 10개 중 4개 정도가 자신과 같았다. 안도를 느끼며 은영은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승지랑은 손절해야겠다... F랑 대화하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로는 해결이 안 되니 감정에 호소하는 찌질한 무리들...
F와 대화가 안 통할 정도로 완벽한 ISTP가 된 자신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