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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든홍 Oct 14. 2024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후기

명작이 평작이 될 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드디어 다 봤다. 작품을 다 보고 난 후의 허무함이 싫어 마지막 화를 미루고 미뤘으나 저녁 먹을 때 볼만한 밥 친구가 없어 봐버렸다.


마지막 화는 내게 기대보다 실망을 주는 작품이었다. 극장판처럼 2시간 정도의 분량이 되는 특별화였는데 주인공 부부인 미쿠리와 히라마사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보여줬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항상 주인공 커플의 행복한 모습이 결말부에만 짧게 다뤄져서 아쉬웠기에 이 특별화에서 주인공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의 건조한 시선이나 맞벌이 부부로서의 현실적 제약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다.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부분이었다.


양성평등, 여성의 인권 신장, 저출산을 유발하는 사회풍토에 대한 비판 등의 메시지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각자만의 사상이 있고 이런 사상들을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부끄럽다. 다만 작품의 팬이었던 내겐 두 남녀의 행복한 모습만 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백분토론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이 작품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에서도 중간중간 작가의 적나라한 의도가 들어간 장면들에는 꽤 어색했다.


음... 예를 들자면 친구들끼리 티비로 영화를 보던 중 똑똑한 친구가 자신 입맛대로 해석한 영화의 결말을 신나게 떠드는 걸 듣고 있는 기분이다. 그 친구가 나쁜 것도 그 해석이 틀린 것 같지도 않지만 내겐 영화 장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 영화의 장면에는 그 친구의 내레이션이 들어간 채로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의도에 납득되는 설명이 있다면 경우가 다르다고 본다. 작가 자신의 의도가 작품 결말 그 자체라거나 전체적인 틀을 담당한다면 이야기 도입부부터 작가의 의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재밌다면 작가의 의도도 거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독신을 추구하는 어리숙한 모태솔로 츠자키와 엉뚱하고 사려 깊은 미쿠리가 사랑에 빠지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드라마다(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기에 고상한 사회비판적인 내용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작품이 내 삶에 스며들어 여운을 남기려던 찰나에 작가의 의도 섞인 장면들로 인해 여운이 꽤 옅어졌다. 과몰입을 방지하게 해준 건 고맙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는 작품은 없다. 그러나 전체 스토리와 약간이라도 빗겨나가는 작가의 메시지는 날 나쁜 의미로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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