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뒤 OST를 찾아 듣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곡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보게 된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영화 [ Il Postino ]는
원작인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를 기반으로 약간의 각색을 거쳐
1994년에 이탈리아에서 개봉을 했고
두해 늦은 1996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을 했다
이탈리아의 작은 외딴섬에,
세계적인 시인이며 정치운동가인 네루다가 망명을 오게 된다.
세계적인 유명인에게 쇄도하는 우편물 배달을 위해
섬마을의 순박한 청년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한 우편배달부가 된다.
그렇게 시작되어 일어나는 작은 섬마을에서의 이야기.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메타포를 통해 세상을 깨달아 가는 마리오의 성장 드라마이다.
극 중에 네루다 역할의 필립 느와레는
1990년 [ 시네마 천국 ]의 알프레도 할아버지역으로
우리에게는 이미 친숙한 인물이며,
순박한 청년 마리오 역할의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 종료 후 10시간 뒤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아르헨티나의 영화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가 담당했는데,
영화 OST 중 두 번째 트랙인 [ In Bicicletta ]가 가장 유명하다.
많은 연주자들은 이 두 번째 트랙을,
영화의 제목인 [ Il Postino ]로 이름 붙여 연주할 정도로 두 번째 트랙이 이 영화를 대표하는 OST이다.
루이스 바칼로프는
일 포스티노의 사운드트랙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대중문화권인 한국에서 태어났고
20대를 온전히 미국에서 지낸 이유로
문화/예술도 지극히 미국적인 것들에 익숙하던 시절.
뒤늦게 지인의 소개로
유럽의 재즈 / 크로스오버 음악들을 접하게 되었다.
유럽 재즈, 크로스오버 음악을 대표하는 ECM을 시작으로
ACT. Winter&Winter, EGEA 등등
미국의 치즈버거에 곁들인 밀크셰이크와는 또 다른
유럽의 바케트에 레드와인 같이 새로운 음악들은
그야말로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 구대륙이 유럽이고 신대륙은 북미대륙인데 말이다. )
유럽의 재즈 음악가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인 이유로
각기 다른 색채로 재해석된 여러 가지 해석의 [ Il Postino ]를 찾아 듣는 재미가 남다른 곡이다.
그중에서도 앞서 소개한 EGEA 레이블의 [La Bottega] 버전은
영화 초반부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다.
마리오의 순박한 모습과 청정한 섬마을의 풍경이
경쾌하면서도 감미로운 아코디언과 클라리넷 선율 속에 녹아있다,
그 특유의 밝고 따뜻한 분위기는
언제 들어도 새로울 만큼 상큼하고 풋풋하다.
ECM에서 발매된 앨범 [ In Cerca Di Cibo ]에서도
앨범 [ La Bottega ]에서와 같은 연주자인
아코디언에 Gianni Coscia와 클라리넷에 Gianluigi Trovesi가 같이 연주한다.
이 버전의 [Il Postino]는
앞의 [ La Bottega ]의 [ Il Postino ]와 같은 연주자들이 연주했음에도
곡의 해석이 많이 다르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마리오의 내면적 성숙과
베아트리체와의 깊어가는 사랑을 더욱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는 느낌이다.
이전 버전이 지닌 밝고 상쾌한 느낌과는 달리,
이 연주에서는 감정의 결을 더욱 깊이 있게 접근한다.
메타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 가는 마리오의 성장 여정을
두 악기가 더 깊고 농밀한 느낌으로 따라간다.
원숙의 경지에 접어든 영국의 노마 윈스턴(Norma Winstone)의 섬세한 보컬과
클라우스 게징(Klaus Gesing)의 베이스 클라리넷이 어우러진 [Il Postino], 또한,
또 다른 매력의 연주이다.
네루다가 떠난 섬마을.
마리오는 홀로 섬에 남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스스로의 메타포를 찾아간다.
사랑과 시, 그리고 세상의 고요 속에서 그는 점차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고,
마침내 자신의 철학을 자신의 삶 안에서 실천하는 어른으로 성숙해 간다.
이 버전의 [Il Postino]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잔잔히 채우며 마무리 지어줄 듯한
Norma Winstone의 영화 마지막 내레이션과도 같은 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여전히 원곡이 아닐까?
영화의 화면처럼 소박하고 풋풋한 외딴섬의 해변을,
낡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비릿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순박한 청년 마리오의 모습이 떠오른다.
풋풋한 아코디언 멜로디는 그 순수한 순간들을 소박하게 담아내고,
화려하지 않기에 더욱 진실된 감동을 전한다.
시와 사랑, 그리고 삶의 작은 떨림까지 고스란히 품은 이 곡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리오의 처음 마음 같은 아름다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