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룩스 이야기-12]
엄마니까 그렇지
시아
정신과 폐쇄 병동에서 일할 때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규모가 작은 병원이었다. 정신지체인 한 여자 환자는 늘 말썽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고, 자신이 그래놓고는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마흔 중반인데도 행동은 갓 입문한 사춘기였고, 사고는 그보다 훨씬 어렸다. 짧은 머리에 작은 체구로 몸놀림이 잽쌌다. 실내에서 금지된 흡연을 하는가 하면, 남자 환자와 몰래 신체 접촉을 하다가 들키기도 했다. 병동 총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한 직원은 그녀한테 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 ‘벌’은 양손을 번쩍 들고 서 있게 하는 식이었다. 개구쟁이 어린 학생들한테 통하던 옛날 체벌 방식이었다. 물론 환자한테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통합 예술·심리치료인 ‘심상 시치료’를 했다. 홀 중앙에 펼쳐진 탁구대를 탁자 삼아서 참석을 원하는 환자들이 빙 둘러앉았다. 시나 수필, 아포리즘을 매체로 활용했다. 중등도 정신지체인 그녀가 잘 알아듣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단골로 참석했다. 그렇게 앉아있는 동안에는 얌전했기에 다른 직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정도였다. ‘걸친 엄마’라는 시를 함께 했을 때였다.
걸친 엄마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시에 대한 느낌을 서로 나누는데,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떨구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말도 많고 쾌활하던 그녀답지 않았다. 느낌을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때는 모른다는 것을 무슨 벼슬이라도 단 듯이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때는 풀 죽은 배추 같기만 했다. 그러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 죽었어요. 삼 년 전에요.”
그녀의 어머니는 얼마나 숱한 사연들을 간직하며 눈을 감았을까.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지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잘 지내라고 응원하며 지켜보실 거라고 말해주자 그녀가 숙인 머리를 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뭔가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어서 엄마가 왜 보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눈물이 번진 눈으로 뜨악하게 나를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엄마니까 그렇지. 우리 엄마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왜 보고 싶은지 물어 본 내가 부끄러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늘, 십 년이나 더 된 이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 이유는 한 노래 때문이다.
The Hollies가 부른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그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인걸요.
엄마니까 보고 싶고, 내 동생이니까 무겁지 않고 걸어가는 것.
이 순수하고 고결한 마음이 늘 함께 하길. 잘못 판단 내린 정신과 육체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들조차 조금씩이라도 사그라들길. 세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순박한 마음이 영혼에 온전히 녹아있길. 그녀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건, 이렇게 기도드린다. 덩달아 나도, 평생 같이 살아온 올해 90살이 된 내 늙은 어머니가 간혹 “내가 살아있어서 너를 고생시키제?”라고 할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엄마. 살아계셔서 감사해요.”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 에세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