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

내가 결혼을 아직 안 해 그런가

동생들과도 하루 건너 싸우던 쌈닭이어서 그런가

싸움이 칼로 물 베기 같을 수 있나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큰 소리가 오간 날,

남편은 운전석에서 나는 조수석에서

나란히 앞을 바라보고 한참을 싸웠다

고속도로 톨비 카드를 충전하려 휴게소에 들렀다

새침하게 카드를 뽑아 충전기계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옆에 나란히 있는 은행 atm기계에 잘못 넣어버렸지 뭐람

전투력을 올려야 할 상황에 실수한 게 자존심 상해,

카드를 거칠게 뽑아 다시 충전기계에 올려놓는데

슬쩍 보인 옆얼굴이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아

어이없게 나도 웃음이 나오려 한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 더 따질지

어떻게 더 화를 낼지 고민하던 순간이 찰나,

등 돌려 누운 내 옆에 가만히 누워 기대는 남편 얼굴이 느껴지자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그저,

으이구 우리 남편

이 한마디 하고

다시 돌려누워 안아준다

나란히 누워

‘우리 서로 상처 주는 말 하지 말자 ‘

‘다음엔 이런 상황이 오면 이렇게 하자’

‘서로가 가장 중요한 걸 잊지 말자’

‘아까 사실 웃음 나왔는데 참았지?’

한 참 다짐하고 수다 떨다 잠드는 밤이다

아까는 그렇게 밉더니

지금은 또 왜 이렇게 짠하고 이쁜지

머리끝까지 올라갔던 전투력이

한순간에 사그라든다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는 말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