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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귀가시간, 나의 취침시간

by 초이

서른을 코 앞에 둔 내 통금은 열 시였다. 인생 처음으로 귀가시간이 정해진 것. 어릴 때부터 ’해지면 집에 들어와야지‘가 익숙해진 나는 크게 엄마를 걱정시키는 스타일의 딸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고 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친한 동생과 종종 늦은 시간까지 차 안에서 수다 떨다 귀가하는 일상이 반복되었고 자정이 넘어 들어간 어느 날, 특단의 조치로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처음엔 이 제한에 큰 불만 없이 따랐다. 하지만 얼마 후, 나보다 무려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의 통금시간도 나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곧바로 ‘내 나이가 이제 곧 서른인데’를 이유로 들며 엄마와 협상을 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나는 무려 한 시간이나 더 늦게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익숙함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나는 슬며시 5분, 10분씩 약속된 시간을 어기기 시작했고, 경고장을 날리던 엄마는 어느 날 레드카드를 다시 꺼내드셨다.


그렇게 내 통금은 다시 열 시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억울함을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의 설명은 이랬다. ‘네가 아무리 다 큰 성인이라도 엄마, 아빠에게 온전히 독립하지 않은 한 정해진 규칙은 지켜야 한다. 특히 아직 어린 동생들이랑 같이 살지 않느냐, 동생들은 너를 보고 배울 텐데 언니로서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 반발심을 불어 일으키기보다는 설득력 있게 들렸고, 무엇보다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님의 그늘 속에 머무른 ’어른이‘었기에.


인간의 심리란 참 묘하다.

엄마의 출국 후, 연장자로서 집안 전권 대행을 맡기 시작한 나는 이 커트라인을 어기는 사람을 집요하게 단속했다. 누구보다 통금제도에 불만이 많았던 내가 ‘수호자’가 돼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동생이 있으면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지 못했다. 도착 예정 시간을 물어가며 빠른 귀가를 독촉했고 약속한 시간을 어기면 지독한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제 들어오냐는 내 문자에, 5분 안에 도착한다고 동생이 답을 했다. 10분이 지나 15분이 넘어가도록 일 층 차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이내 마음이 불안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문자가 아닌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연달아 보이스메일로 넘어갔다. ’혹시‘에서 출발한 상상은 속도가 붙자 멈추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이 번쩍 깨고 온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혹시 사고가 났나.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몸을 벌떡 일으키자마자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나 집 앞. 지금 전화중’


아무 일 없다는 듯 보내온 메시지에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화가 밀려왔다. 단순히 서로 미리 정한 규칙을 어겨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출근인데 일찍 잠들지 못해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느낀 엄청난 긴장감과, 이 긴장이 풀리며 복잡하게 섞여 있던 두려움, 초조, 무력감 등의 감정이 분노로 표출된 건 아닐까.


잠시 후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차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작에 집 앞에 도착해 차 안에서 통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대화가 오가고 있어서 중간에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엄연히 따지면 귀가시간을 어긴 것도 아니었다. 속마음을 숨긴 채 ‘그랬구나‘하려 했으나, 너무나 해맑게 들어온 얼굴을 보니 꾸역꾸역 눌러둔 노여움이 올라왔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여러 번, 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며 불안에 떨었다. 참 이상했다. 평소엔 별로 신경도 안 쓰던 귀가시간인데 말이다.


동시에 딸들이 다 들어올 때까지 잠 못 드는 엄마의 오래된 습관이 이해가 됐다.


‘왜 이렇게 늦어. 그럼 미리 연락은 해줘야지.’라는 말 뒤에, ‘걱정했어. 무사해서 다행이야.’라는 말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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