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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09. 2023

이혼의 징조를 알았더라면 - 2

이혼하면 어때 #7

그동안 우리 부부는 싸우면 금방 화해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려 일주일이나 대화 없이 지내고 나니 자존심 싸움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고.


대체로 나는 화를 내는 경우가 적었다. 그리고 화를 낸다면 반드시 아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런 패턴의 내 성격은 그녀가 알았고 인정해주었다. 그래서 아내가 먼저 손을 내밀거나, 조율을 하려고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먼저 손내밀지 못한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하필 그 시기에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의학적 진단을 잘못하여 가벼운 물리 치료만 받고 있었던 어깨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치료에 차도가 없어 큰 병원을 찾았다. 관련 검사 및 MRI 찍은 후 담당의사는 나에게 시한부 환자 같은 진단을 내렸다.


"빨리 수술하셔야 합니다. 상황이 심각해 놔두면 곧 전신 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고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어깨가 아픈 것은 목디스크가 돌출되어 신경을 눌러서 아픈 것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척수가 손상되어 전신은 점점 마비될 것이라는 의사 소견이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 반신반의했고, 이것저것 의심하며 많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죄송한 말씀인데, 수술을 안해도 완치 되는 것을 무리하게 수술 권유를 하는 병원이 많다고..."

"전신마비 올겁니다."

"선생님. 인터넷에서 보면 수술 후가 전보다 경과가 더 나쁜 사람이 많다던데..."

"그런 사람들만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그런겁니다."

"선생님. 또.."

"저기 실장님이랑 수술 날짜 잡으시고. 다음 환자 분 오시라고 하세요~!"


그 담당의사는 귀찮았는지 수술 안 하면 너만 손해라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수술을 해도 이렇게 성의 없는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수술 날짜를 잡자는 의사의 의견은 잠시 보류하고 여러 병원에서 검진해 보기로 마음먹고 진통제 처방만 받았다.


냉전 중이긴 해도 아내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 상황을 설명했지만 (나를 조금 더 신경 써주길)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반 디스크 수술 정도로 생각한 아내는, 할 거면 하라는 식의 담담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술을 계속 미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


아내는 본인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때의 싸움 이후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아침, 저녁에 수영과 요가를 등록하고 자기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나대로 최대한 수술을 피하고 보존치료를 하기 위해 무리한 운동과 외출을 자제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내가 맡고 있는 팀의 성과를 위해 무리하게 업무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이 잦아 몸은 갈수록 축나고 있었다.


이토록 가정과 직장이 모두 나를 괴롭히는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지옥이었다. 그리고 몸의 진통과 이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부부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마음의 여유와 의지가 정상일 수 없었다. 우리는 점점 동거하는 남이 되었고, 식사조차 같이하는 일도 없었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이혼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개인적인 물건을 처가로 옮기거나 처분하고 있었다. 아내가 취미로 연주했던 첼로나 전자키보드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빈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고, 이혼을 구두로 합의했다.


이제 혼자가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고, 건강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과거 우리 집이 병원을 운영할 때 근무했던 직원이 현재 이사로 있는 척추병원에서 재진료를 받고 바로 수술 예약을 했다. 대학 병원급에서 수술하지 않고 이 병원을 선택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원장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와 확신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직원 덕에 입원 시 1인실 등의 각종 편의를 제공 받았다. 더불어 병원과 어머니 댁의 거리도 가까웠고.

아직도 그녀는 내가 어느 병원에서 어떤 수술을 했는지 모른다. 병원 입원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술직전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중략) 혹시 내가 잘못되면 분할하기로 한 재산은 우리 엄마에게 주면 좋겠어."


그러나 대답을 오지 않았다.


비록 이혼을 합의하고 입원을 했지만, 진정한 이혼결심은 이순간이다.


'무정한X, 나쁜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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