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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05. 2023

둘에서 혼자가 된 직후 - 1

이혼하면 어때 #8

재산 분할을 위해 공동명의의 집을 내놨지만 원하는 가격에 팔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인수했다. 이제는 전처가 돼버린 그녀. 잘 살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고양이 '유리'를 데리고 유유히 떠났다.


'후우. 인생무상이란 이런 느낌인걸까.'


한 사람 분량의 짐이 빠진, 아니 그녀가 빠진 집은 허전했고 사람인 양 외로워 보였다.


이혼 확정 전 수술을 위한 입원부터 퇴원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셨던 어머니는 전처가 집을 나가자 두세 시간이 멀다 하며 전화를 하셨다.


어느 날 퇴근 후 저녁, 냉장고의 반찬 남은 양을 물어보시다가 울먹거리셨다.


"걔는 정말 나쁜 애야. 어떻게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래도 산 정이 있는데, 결혼해서 처음 입원한 남편에게 한 번의 안부 연락 없이, 괜찮냐는 전화 한 통화 없이 지낼 수 있는 거니. 네가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다 감당하며 내색 없이 괜찮은 척하는 거 다 알아.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어. "


이미 이혼 하기로 합의해서 병문안을 안 온 거라고 둘러댔지만,

어머니는 이미 나를 대신해 속으로 울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 미안해요. 손주도 못 안겨드렸는데 이혼까지 하는 불효를 저질렀네요.


어머니의 저 말씀에 그동안 버텨왔던 내 자존심이 무너지고 감정이 봇물처럼 밀려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누가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 한마디가 이렇게 나를 흔들 줄은 몰랐다.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이었을까? 나는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다.


***


부모님은 작은 병원을 운영하며 삼 남매를 키우셨다. 나는 2남 1녀 중 막내다.


큰 형은 스튜어디스인 형수를 만나 결혼했고, 누나는 한때 유명 연예인이었지만 지금은 퇴물 가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늦바람으로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각자 홀로서기를 했다.


그러나 겨우 2년 만에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병원은 부도가 났고, 집은 경매에 붙여졌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파산 및 회생절차를 걸쳐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아버지가 운영했던 또 다른 병원도 망해서 그 바람난 여자와도 결별했다고 한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가족이야기지만 모두 나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형은 아버지를, 나는 어머니를 부양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께 슬며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엄마. 이제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아빠 얼굴을 한번 보는 게 어때..."


하지만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며 정색하곤 했다.


"다시는 그런 소리하지마러. 엄마가 아빠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생각만 하면 너무 화가나고..."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원한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그 후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바람이 있었고 그 뜻에 따랐다. 누나는 언젠가부터 암투병을 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케어하기도 벅차 가족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여하튼 어머니는 나와 경제 공동체가 되었지만, 서로 사는 곳은 서울과 인천으로 달랐다. 나는 이 참에 어머니께 인천 집은 정리하고 서울로 살림을 합치자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생각은 달랐나 보다.


"네가 나중에 여자라도 만나려면 내가 들어가면 안 된다. 그리고 엄마는 친구가 모두 인천에 있어서 여기가 좋아."


그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훗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


주말마다 어머니는 서울 집에 오셔서 밑반찬을 냉장고에 채워주시고, 청소 빨래를 도와주셨다. 우리 두 모자는 딱히 말은 없었지만 매우 익숙한 듯 빠르게 변화된 생활의 방식에 적응해 갔다.


이혼 후 삶은 전에 상상했던 것과 다름이 있었다. 폭풍 같은 고통과 고민의 시간이 지나 어느새 고독한 중년남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았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후의 삶은 무규칙적이고 즉흥적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몸을 단장해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 샤워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청했다.


부부가 함께했던 삶의 규칙과 패턴은 합의와 배려를 기본으로 정해지지만, 혼자만의 삶은 수십 년 동안 습득해 온 경험과 지식이 내게 가장 적합한 행동지침을 내려주나 보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이별 후 오랜만에 만난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너 행복하니?"


그렇게 물어보는 내 마음에게 다짐도 해보고. 난 꼭 행복할거란 약속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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