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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20. 2023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 1

이혼하면 어때 #27



이혼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사적 만남이 늘어갔다.


어느 날, 한 동창 녀석의 연락을 받았다.


"잘 지내지?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이 녀석은 다른 학과에서 우리 학과로 편입해 친구가 적었는데, 유일하게 나와 친해서 각별하게 지낸 사이였다. 카톡으로 안부를 묻곤 했지만 이렇게 통화를 한건 십 수년 만이었다.


"나 십년 전에 결혼했어."


뜨금없는 나의 예전 결혼 소식에 큰 소리로 축하해주었다.


"늦어지만 축하한다. 그때 연락을 못 받아서 못 갔어. 연락해주지 그랬냐. 서운하게."


나는 그 소리를 다 듣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런데 작년에 이혼했어. 크크크크크크." 이어지는 내 말에 놀란 그 녀석은 멋쩍어 했지만 돌아온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나돈데?"


이런. 우리는 가정이 있고 화목할 때는 서로 연락을 안 했구나.


동병상련(同病相憐).

이건 만나야 해.


동시에 외쳤다. 그 날 저녁 퇴근 후, 그 친구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회사 앞에서 만난 친구의 모습은 대학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당한 인격을 품은 배와 조금 벗겨진 머리를 제외하면.


그 동창 놈은 자신의 성취와 사내 위치를 자랑했지만 그것은 큰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결국 서로의 이혼 담을 털어놓으며 처지를 위로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최근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얘기했는데.


"회사에 친하게 지내던 상무가 있었는데 그 상무도 쏠로여서 나와 죽이 잘 맞았었거든. 근데 그 상무랑 우리 집에서 3차를 하고 내 침대에서 둘이 취해 잠들었는데... 씨발. 아오."


설마하며 뒷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의 '남자' 상무는 친구를 뒤에서 안고 더듬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그 친구는 그 밤새 철벽 방어와 동시에, 상사의 민망함을 배려한 이병헌급 모른 척 연기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나.


그다음 날부터 그 상무와 멀어졌고 지금은 얼굴만 보면 서로 피한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는 회사에 떠도는 상무의 이혼 사유를 듣고, 본인이 당한 건 성추행이라며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성적 소수자도 이혼 대상이 될 테니 왠지 같은 편인양 그 상무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곧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막연하게 군대를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1,2학년 남들 다가는 군대를 지원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자격증과 시험으로 병역특례를 취득해 당시 다니던 학교의 전산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담당 업무는 학사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고, 주로 교수 연구비 관련된 일을 하였다. 아무튼 현역 군인보다는 긴 시간을 복무했지만 현역 군인의 그 힘듦에 비하면 너무나 편한 생활이었다. 그리고 월급도 꽤 많이 주니까.


그 후 1년쯤 지난 어느 날, 나와 같은 신분인 문식이(가명)가 들어왔다. 산만한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케 하는 외모였다.


"헤헤. 저랑 한 살차이인데 그냥 친구해요. 우리!"


하지만 정반대의 성격과 귀여운 말투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나이였지만 직장 내 선후배의 신분과 나이차를 퉁치며 친구로 지냈다.


몇 개월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직무 스킬이 안정된 문식이와 정부 BK21이라는 사업에 참여하여 출장을 가게 되었다.


무난하게 일정을 끝내고 예약된 호텔(같은 모텔)의 마지막 밤이 되어 거하게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평소 술을 좋아했던 문식이는 만취를 했다.


산만한 덩치를 질질 끌다시피해 숙소로 데리고 왔는데.


“나.. 사실 이반이야.”


이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말하는 건가?

전혀 모르는 단어를 쓰는 문식이를 쳐다보면 되물었다. 갑자기 변한 문식이 눈깔.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아주 다정하게 설명했다.


“일반 아니고 이반이라고. 여자보다 남자에게 끌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하나뿐인 침대를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술 취한 저놈의 옷을 벗겨 잠자기 편한 자세로 눕혔다는 사실이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쓰며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씨발노마아아아아아.


"으헉."


문식이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뻔했다.


하지만 그놈은 웃으며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왔다. 꼭 에일리언이 절벽에서 올라오듯이.


미안했던 감정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고, 침대 스탠드 옆에 있던 볼펜을 살며시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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